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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마음속 고향은 풍화하지 않는 것일까.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평양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노화가가 90을 바라보며 결단을 했다. 정녕 갈 수 없다면, 갈 곳 없던 젊은 화가의 풍파를 받아주었던 그 섬으로 가버리자고. 마음의 고향, 제2의 고향이면 어떠랴. 몸도 그림도 뉘이고 싶었다. 한국구상미술계의 거목이자 살아있는 근현대사 장리석 화백.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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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9.04.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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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통일이 아닌 시는 '헛 시'다. "대한민국사람에게 가장 큰 것이 통일이죠. 시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명제에 대해 대답을 해줘야 해요." 아흔 셋. 우리문단의 최고령 현역시인. 손은 떨리지만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시혼은 뜨겁다. 여리고 작은 체구, 절규하듯 쩌렁쩌렁한 목소리. 80년대 이후 민주화와 통일 희구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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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9.04.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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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사람이 사람을 죽이랴 헷수다. 팡! 허난 셋이 마당에 엎어진거라." 순식간에 마당은 어린 선혈로 낭자했다. 1948년 11월13일. 4·3초토화작전의 극점이던 중산간 마을 교래리. 통곡도 슬픔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날. 양복천, 그녀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토벌대에 의해 열 살 아들을 잃었다. 세살배기 딸을 업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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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9.04.0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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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탁발승이 5년전 우리산하 구석구석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생명평화의 마음'을 탁발했다. 타박타박 그렇게 걷고 걸어낸 길은 장장 3만리. 이 땅에서 만난 사람들만 대략 8만명. 그 순례자, 길에서 돌아와 하는 말씀. "남은 거 별거 없더라. 지금 여기 있더라. 우리 안에 있더라". 결국 최고의 신랑감, 신부감은 바로 우리가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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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9.03.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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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우선하는 돌문화공원과 돌에 대한 완벽한 이해력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 사람은 멕시코출신 건축의 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였다. "돌문화공원에서 태고적 문명 세계를 연상했다"고 한 사람은 중국의 세계적인 작가 위화였다. 생전의 미술사가 최순우도 추상미에 감탄한 그 제주의 돌이다. 어느 밝은 망막엔 삶의 쓸쓸함과,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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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9.03.0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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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80년대를 건너면서 그 책 한권 보듬지 않은 이 있을까. 얼어붙고 갈라터진 저 산맥의 등줄기같은 우리 근현대사, 그 질곡의 역사를 유장하게 관통해간 대하소설 「태백산맥」. 내친김에 이후의 「아리랑」 「한강」까지 그 작가의 3부작으로 함께 들어간 이들 적지 않으리. 마흔에 그 격랑속으로 온 몸을 던졌고, 헤쳐나오자 예순. 20년 '글감옥'에 갇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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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9.02.1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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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의 벗'이라 했다. 그렇게 아무리 벗어나려해도 걸려들었던 4·3을. 소름이 흘렀던가. 20대의 내가 그 소설을 몰래 이불속에서 읽으면서. 그것을 쓴 작가가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도 모른채. 70년대 끝자락 그 소설 「순이삼촌」은 4·3의 상징어였다. '순이삼촌'은 어둠 저 편에서 잠들어있던 4·3의 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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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2.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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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은 오백년을 가지만 종이는 천년을 길이 남는다" 했던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시절, 종이때기에 혹해서 살았다. 열정이 없으면 시작도 말라. 집안에 쌀이 떨어져도 절대 풀지 않았다. 인사동 갈 때마다 손가방에 현금 20만원을 담고 나가던, 종이에 미쳐 사는 동안 인사동 일대에선 괴상한 여자로 소문났다. 종이연구가 김경. 요강,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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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2.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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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결단했다. 멀어서 자신을 묶어놓을 수 있는 정신적 유배지, 자신의 미래를 붓칠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 제주도였다. 결국 그의 화면은 그 섬의 밝고 따스한 색조로 가득 찬다. 한폭의 시처럼. 소리가 들린다. 둥글고 키큰 나무에서 쏟아지는 꽃비, 그 꽃나무 안쪽에 정좌한 빈둥거림, 그 바깥쪽의 삶의 풍경들. 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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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2.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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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침묵하지 않았다. 평화를 힘으로 얻을 수 없다했다. 제주땅에 온 사제는 '제주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도문'을 쓰고 기도한다. 그의 메시지는 부드러우나 강렬하다.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며 개발의 포로가 되어 주님께서 은혜로이 내려주신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4·3위원회의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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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2.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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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누가 힘든가/오늘은 누가 아픈가/느린 걸음으로 찾아 다니며/따뜻한 맨손으로 어루만지는 사람/물은 세 걸음만 흘러도 스스로를 맑게 하듯/그대 몸 안에 숨은 치유의 힘이 있다고/아픈 그 자리에 믿음의 나무를 심는 사람/그는 첨단 장비를 들지 않았다네/가늘고 순한 오래된 침 하나라네/그는 비밀스런 영약을 들지 않았다네/이 땅의 가장 흔한 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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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1.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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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빈궁의 그늘아래 있던 해방직후, 홀로 검은 제주바다를 건넜다. 귀덕 바람코지가 키워준 튼실한 소년의 몸 하나만 믿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오사카, 그 땅에서 그가 얼마나 칼칼하게 삶을 헤쳐왔는지를. 그도 이제는 황혼. "실천을 이길 실력은 없습니다. 바르게만 살면 자연히 행복이란 것도 나타는 것 아니우꽈." 제주대학교가 재일제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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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1.2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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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그의 '무소유'를 기억하는가. 70년대 그는 소유의 욕망에 휩싸인 모든 살아가는 것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내면을 향해 서늘한 죽비를 내리쳤다. 시대와 온갖 삶의 풍진들에게도. 그도 이제 출가 52년. 오랜 세월 그렇게 산사의 시간을 흘려보냈던 그는 여전히 삶의 녹슬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자연과 살고 있다.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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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1.1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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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은 약이다." "온 몸으로 먹는다" 별처럼 빛나는 삼천년전 붓다의 말씀. 이 말씀을 대중에 전파하는 것이 전생이라는 사람. 한국의 사찰음식을 세계적인 건강식으로 알리는 스님. 조분조분하고 깊이있는 명강의로 이름난 스님. 최근 제주산업정보대 평생교육원 가을사찰음식 특강차 제주를 찾은 선재스님을 만났다. 그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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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0.3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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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경기장은 뚝! 호흡이 멎었다. 베이징의 10만 관중석은 정적에 빠졌다. 골인! 환호가 울린 것은 바로 3∼4초가 흐른 뒤였다. 예상밖이었을까. 중국선수가 당연히 골인할 줄 알았을까. 멍했다. 자신도 그때야 손을 들고 관중들을 돌아봤다. 그제야 환호가 터졌다. 그의 머리는 멍했다한다. 시속 33㎞이상의 질주였다. 텅 빈 공이었다했다. 4년전 아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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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0.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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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꾼다. 공간의 평화를.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늘 응시하고 있는 존재는 아닐까. 그는 멕시코의 세계적 화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페드로 코로넬' 등과 정신적으로 소통하며, 회화와 조각이 건축공간과 생활의 일부분으로 승화시켜 '영혼을 다루는 건축가'로 불린다. 현존하는 세계적 지역주의 작가이며, 세계 건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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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0.1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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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이 한올의 시가 이 땅의 청년들, 누군가의 가슴에 불꽃을 지피고 떠난 뒤였다. 그 사랑과 혁명의 시인, 신동엽이 서른여섯 생애를 다한 후였다. 그녀가 지푸라기라도 잡듯 이 땅의 하릴없는 짚풀을 잡고, 거기에 매달려 남은 생을 다 바치게 된 것은. 그 시인의 그늘아래 있던 아내 인병선. 그녀는 전국의 시골을 땅거미 훑듯 배낭하나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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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0.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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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읽어야할 책도 많고,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도 별처럼 많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그렇지, 언어가 통하는 사람에게 그 책은 또 얼마나 무수하랴. 세계의 아무리 빼어난 작가들도 그 작가와 소통시켜줄 끈이 없으면 그 곳에 건너가지 못한다. 번역의 통로가 없다면. 그는 그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번역작품의 역자를 보라. 거의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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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10.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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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시대의 얼굴이다. 복식에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냄새가 절절하다. 땀과 호흡이, 역사가 흐른다. 이름 모를 옛사람의 출토복에서 한 시대를 유추해내고, 삶의 양식을 밝혀낸다. 과학문명의 시대, 손으로 한땀 한땀 세고, 올을 세는 바느질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사람. 제주출신 복식학자 고부자 교수. 1968년부터 그는 우리 땅 구석구석을 밟았다.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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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09.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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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그랬다. 타고난 목청은 팔순인데도 거의 늙지 않았으니. 소리가 뱃줄로 나오는데 왜 늙느냐는 그녀. 물질로 팔도강산 누볐고, 소리로 바깥세상 두루 맛봤다. 자신만만하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상이어서 그럴까. 제주시 무형문화재 1호 김태매. 그녀는 지금도 팔팔한 현역. 젊어서부터 거칠 것 없이 제주 밖의 세상을 가장 많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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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08.09.18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