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꿈, 가르침의 희망이 쑥쑥 자라난다. 30여년간 꿈과 희망으로 뿌리내린 동려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또 언제나 문은 열려 있다. '동려(同旅·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가 그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 '동려' 어려운 삶에도 배움의 길을
요즘의 교육현실을 놓고 많은 이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다수의 학생을 희생시켜 소수의 1등만을 위한 비민주적인 교육'이라는 비난으로 공교육의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꽁꽁 얼어붙은 겨우내 시린 땅위에도 봄이 오면 희망의 싹이 트기 마련이다.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청소년헌장에 따르면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갈 권리를 가지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청소년헌장에 명시돼 있는 기회가 모든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고 있을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가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곳 '청소년참여위원회'에서 만큼은 청소년이 나라의 '주인'이다. △청소년참여위원회는 어떤곳?
공교육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학업성취도를 높여 무조건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 누구나 공감한다. 학생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하고 키울 수 있도록 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감과 동기부여를 주는 것 역시 공교육으로서 학교가 담당해야할 책무다.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장전초등학교를 찾았다. △큰 꿈, 큰 사랑 실천하는 학교
'조금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은 변화와 쇄신의 노력을 통해 꿈꿔볼 수 있다. 학교폭력이니 빵셔틀이니 교권추락과 같은 불편한 단어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갈등' 대신 '소통'으로 희망을 찾으려는 일선 학교의 노력은 언제나 빛이 난다. 한꺼번에 큰 결실을 맺겠다는 욕심보다 작지만 진심어린 바람과 노력이 지역사회 모두를 움직이고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동참해 학교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표선고등학교(교장 박원권)를 찾았다. △관심과 기대 모두를 변화시키다
학생 수 감소로 농어촌 소규모 학교들의 통폐합 문제가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 학교는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줄어만 가고, 줄어드는 아이들로 인해 마을은 활기를 잃어간다. 학교가 마을에 주는 의미를 모르지 않기에 고민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지난해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된 해안초등학교(교장 고영탁)의 사례는 작지만 의미있는 사례로 기억된다. 해안초는 새로
교육과정 개편으로 들쑥날쑥 자리를 잡지 못하는 과목 중 하나가 ‘사회’다. 여러번 모습을 바꿨지만 초등학교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내가 사는 곳은 바로 여기’ 하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다. 사실 책만 들여다봐서도,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도 도심에서 벗어난
'학교 밖'이란 말은 종종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이라는 사회적 기준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을 정리해 말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학교 안'에서는 다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이나 예·체능 활동의 대안을 설명하는 경우다. 사실 두 가지 모두 '학교'라는 틀을 기준으로 삼았을 뿐 생각하는 것을 행동
올 초 학교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이어졌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이 연일 부각되고 이른바 문제 학생들의 배경에 시시콜콜 말이 많다. 가정 환경이 불우하고, 온라인 게임 등에 빠져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경쟁중심의 교육 체계가 만든 문제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이 다 나쁜 것일까. 가족들 사이 '은밀한' 경쟁이 시작된다. 서로 얼
'장애'라는 단어를 듣고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은 불편함이다. 사실 그럴까. 불편하다는 것은 객관적이기 보다 방관적인 시선에서 만나지는 감정이다. 장애·비장애라는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세상에 나서는 것이 두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의 기준과 다르거나 불편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디고 좀
미술관에는 '문턱'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에 부담처럼 쌓여 저마다 조금씩 높이의 차이가 나는 문턱…. 선뜻 미술관에 들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평범한 우리들에게 "왜 그럴까?" 질문을 던진다. 지난날 우리가 받아왔던 미술수업이 약간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제 만나볼 '찾아가는 미술관' 수업은 그 문턱을 낮추
교육환경 개선과 함께 '적정 규모'학교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면서 작은 학교들이 적잖은 진통을 겪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기에 학교가 마을에 주는 의미는 고민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하가리 연화못 인근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교장 장상보)은 그런 고민에 작지만 의미 있는 답을 던진다. △ 되살아나는 '분교'
5년전부터 폐지 수거 모금 400만원 달해탐사활동·플레시몹 등 다양한 홍보 눈길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런저런 학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사회활동이 가당키나 할까. 사회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논술을 위한 펜과 종이 위에서나 가능하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지성'이라고 했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을 양산하는 사회가
희망 부재중. 요즘의 교육 현실을 놓고 많은 이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사실일까. 어쩌면 우리는 보여 지는 단면에만 치중한 채 미래를 꿈꾸는 현장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 속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던 '희망'이다. 집단따돌림이니 사이버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교권 추락 같은 불편한 단어나 갈등 대신 소통으로 희망을 찾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