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는 거대한 제국 원을 맞아 고려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의로운 투쟁이었다. 원나라를 상대로 임시왕조를 세워가면서까지 투쟁했던 민족은 고려인들이 유일하다.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외세에 맞서 40여 년 동안 항쟁했던 삼별초의 대몽항쟁은 우리가 잘 기념하고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다.△끝나지 않은 전쟁 50년 몽골 전란삼별초의 패망이 곧 제주에서의 전란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273년 삼별초의 패망에 이어 제주에 대한 지배권은 몽골에 넘겨졌다.몽골은 탐라국초토사라는 관부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탐
일찍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대부분 정복한 몽골(원나라)은 고종 18년(1231)부터 30년간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해 왔다.이에 고려조정은 강화도를 임시왕도로 하고 몽골을 상대로 저항했지만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하지만 배중손 장군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는 끝까지 고려를 지키고자 대몽항전을 결의했다.진도에 이어 제주도로 퇴각해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고 최후의 1인까지 대몽항쟁을 이어갔지만 결국 원종 14년(1273) 여몽연합군의 총공격을 받고 모두 섬멸된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당시 세계 강대국이었던 몽골과 맞서 끝까지 항쟁을
성곽은 전쟁에서 최후의 방어 공간이며 공격의 공간이다.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처음이며 마지막 방패막이다. 어느 고대 국가를 막론하고 성은 최고의 석축기술을 동원하고 있다.이처럼 성들은 그 나라의 국력, 상징을 나타내며 이렇게 쌓은 토성과 석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상당한 고초를 겪으면서 쌓은 역사다.그렇기 때문에 축성 기술과 건축 기법들은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과 다르다. 고구려 성을 비롯해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맥을 함께 이어오고 있다. 그 축성 공법과 디자인들은 치밀하고 견고하게 축성하고 있으며 여기에 예술성까
제주도 삼별초가 섬멸되면서 고려의 대몽항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강화도에서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4년 동안 몽골에 항쟁했던 삼별초는 1273년 제주의 싸움에서 모두 섬멸된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삼별초를 진압한 몽골은 이제 거침이 없었다. 고려를 속국으로 삼아 100년을 지배했다. 그러나 실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계유년고려와장조(癸酉年高麗瓦匠造) 명문와(銘文瓦)'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것이다. 이에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멸망한 게 아니라 오키나와로 이동했다고 추정할 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강화도를 떠난 삼별초는 진도를 근거지로 택했다. 강화도를 떠나온 삼별초는 진도에서 활동을 개시했다. 삼별초의 활약은 여러 전투에서 승리와 패전 그리고 퇴각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1271년 5월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으며 진도는 함락되고 배중손 장군도 전사했다. 삼별초는 다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 항파두리에 진지를 구축한 뒤 항전을 이어갔다. 제주도는 고려 원종 14년(1273년) 삼별초가 1만2000여명의 여몽연합군에 맞섰던 최후의 격전지이자 대몽항쟁의 종착지이다. 제주 삼별초는 고려의
반몽파인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건 친몽파 무신들이었다. 김준 등은 60년간 이어진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수장 최의를 죽이고 몽골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추진한다. 1259년 고려와 몽골 사이에 강화가 성립됐다.이후 무신 세력 간에 환도 찬반문제를 놓고 친몽파와 반몽파 간 또다시 세력다툼이 벌어지면서 죽고 죽이는 상황이 이어진다. 결국 무신 임유무와 문신 송송례, 홍문계의 싸움에서 임유무가 죽으면서 100년간 지속된 무신정권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같은 무신정권의 몰락은 왕정 복구와 개경 환도를 동시에 가져왔다. △ 최정예부대 &
강화도는 외세의 침략과 압력의 시기에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특히 13세기 몽골의 침략에 장기항전이 전개되던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는 39년간 고려의 수도로서, 그리고 항전의 지휘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역사적인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최강 군대 몽골, 고려를 침략하다테무친(Temujin)은 몽골족을 통일한 뒤 1206년 칭기즈칸(Chinghis Khan)이라 칭하고 원(元) 나라를 세웠다. 원 나라는 중앙아시아 대륙을 통일하고 지금의 남부러시아와 아라비아, 유럽 이탈리아반도 북부까지 정복했다. 고려가 세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원나라)은 동서양을 휩쓰는 막강한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세계 지도를 바꾸어 나갔다.일찍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거의 정복한 몽골은 고려 고종 18년(1231)부터 30여년간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해 왔다.이에 고려조정은 '강화도'를 임시 왕도로 삼아 강대한 침략군을 상대로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개경으로 환도했다.이에 배중손 장군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는 고려를 지키고자 원종 11년(1270) 군사를 모아 대몽항전을 결의했다. 삼별초(三別抄)는 좌별초(左別抄)·우별초(右別抄)·신의군(神義軍
통합 왕조 고려 마지막 항몽세력강인한 자주의식 재해석 필요 제기항쟁 여정 따라 문화 콘텐츠 발굴산업 연계 활동 방안 모색 주문도'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 연구와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고려는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냈던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삼별초는 40여년간 진행된 고려 항몽 전쟁의 핵심 주도 세력이었지만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외세의 압력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이들의 의지와 기개는 오늘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