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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이 부족한 섬하나의 사건은 지역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건들은 유기체처럼 얽혀있어 하나의 거대한 체제 속에서 잉태하고 출몰한다. 그래서 '사건은 먼지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언제나 의미심장하다. 사건이란 하나의 사회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현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4·3이 단순한 지역사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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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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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唐浦)에 버려진 5인의 흑인 제주 정의현(旌義縣)과 대정현(大靜縣)은 한라산 남쪽의 동서에 위치한 곳으로 조선의 남쪽 변방 중 가장 멀리 있는 국경의 끝이자 유배지였다. 이곳의 바다는 남태평양의 물길이 맞닿아 있어서 수많은 이양선(異樣船 : 서양배)들이 주야로 지나간다. 여름철에는 태풍의 길목이기 때문에 예측 없이 큰 바람이 불어 지나가는 배들이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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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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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 유출을 막았던 출륙금지령왕화(王化·임금의 통치)가 제대로 미치지 못했던 절해고도(絶海孤島)는 조선 왕조의 큰 고민거리가 되는 변경이었다. 제주에 똑똑한 문관을 보내기에는 너무 외진 곳이고, 왜구(倭寇)와 황당선(荒唐船:외국배)을 생각하면 무관(武官)이 적격일 것 같았다. 그러나 무관(武官) 또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변방의 바깥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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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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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군(烽軍)의 고초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부리는 사람들의 능력과 역량에 따라 그 제도의 장단점이 드러난다. 봉수(烽燧)가 변경(邊境)의 위급한 상태를 알리는 중요한 군사시설이나 봉수(烽燧)의 운영은 만만치가 않았다. 봉군(烽軍)들의 실수가 계속되면서 봉수제(烽燧制)의 폐지가 때때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를 대체할 뾰족한 대안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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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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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연가(戀歌)'제주는 바다 속에 있는 외로운 섬으로 바람과 파도가 매우 험해서 그곳에 가기를 몹시 꺼린다. 옛날 어느 사람이 제주의 관리가 되어 장차 부임하게 되었다. 떠나는 날을 당하여 눈물을 흘리자 그의 친구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다행히 좋은 바람을 만나서 물결에 밀려 여인국(女人國)으로 가게 되면 국왕(國王)의 남편이 될 수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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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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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오랑캐 관리 최부, 황제를 배알하다 1488년 4월 20일 북경의 옥하관에 머물던 최부는 황제를 배알하기 위해 자금성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상복(喪服)을 절대로 벗을 수 없었지만, 대상이 황제인지라 길복(吉服)으로 갈아입고 자금성 정문인 오문(午門)을 거쳐 대궐 안으로 갔다. 중국인 관리들은 최부를 공식적으로 호명할 때 '조선 오랑캐 관리 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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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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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가장 번영한 도시, 강남 최부 일행이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를 떠난 것은 1488년 2월13일. 절강성 총병관이 파견한 이송 책임자 양왕(楊旺)과 두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북경을 향해 떠났다. 북경 도착 기한은 4월 1일까지였다. 항주의 절강(浙江)은 강물 흐름이 굽이지고 꺾여 있으며, 옆에 있는 산에서도 파도가 되돌아 치는 형세가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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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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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의 표해록(漂海錄)최부(崔溥, 1456~1504)는 일찍이 중국 사람을 만나 자신의 운명을 점쳤다. 그 중국 사람은 말없이 시를 써주었으나 최부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그 시는 이러했다. '고소성 밖의 한산사 밤 종소리가 객선에 들려오네(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최부가 뒤에 표류해서 중국 태주(台州)에 이르러 밤에 종소리를 들으니, 그곳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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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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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중국 표착지 강남원래 고려와 송나라가 교류하던 초기의 항로는 황해도 연안에 있는 옹진(甕津) 항구에서 출발하여 중국 산동성 봉래현(蓬萊縣) 등주(登州)와 제성현(諸城縣)의 밀주(密州)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뱃길은 북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거란에게 노출될 염려가 있기때문에 고려조정은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부득불 항로 변경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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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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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이여하니 내 눈물 난다/이엿말일랑 말아서 가라/江南가거든 海南을 보라/이여도가 반이라 한다.이 노래는 잠녀들이 노를 저으며 부르는 가사의 일부분이다. 제주 잠녀들의 관념에는 은연중에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理想鄕)인 이어도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강남(江南), 해남(海南)이라는 지명이 눈에 띈다. 잠녀들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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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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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인이 본 류큐 풍속1770년 장한철 일행이 류큐국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두 번의 표류 끝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야기는 르포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보다 약 44년 앞서 류큐에 표류한 김일남·부차웅의 류큐 표류기와 다시 그로부터 300년 전 김비의(金非衣, 金非乙介) 일행의 류큐 표류기는 그 나라 풍속과 문화에 대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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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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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를 단절시킨 류큐 태자의 죽음 조선은 류큐(琉球)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17세기~18세기 초 조선에서는 '류큐(琉球)는 제주의 남쪽에 있어서 맑은 날에는 제주에서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왕궁은 소박하여 단청의 장식이 없으며, 세금은 각기 토지를 나누어서 녹봉(祿俸)과 식량을 마련하고, 상하간(上下間)에는 세금을 받거나 걷어들이는 일이 없다.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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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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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이 모여사는 옹점(壅店) 마을 정운경(鄭運經, 1699~1753)이 채록한 제주사람의 일본 표류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관노(官奴) 우빈(友彬)이 표착한 곳은 일본의 취방도(翠芳島)였다. 산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폈더니 섬 둘레는 고작 20~30리에 지나지 않았고, 잡목이 울창하여 겨울이지만 늘 푸르렀다. 흙은 검은 빛이었고, 돌은 모두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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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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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스바에서 유래유럽인들은 일찍부터 '동방(東方)'이라는 지리적 개념을 사용했다. 이런 관념은 후에 아시아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원래 아시아란 말의 어원은 앗시리아 말로 '일출'을 뜻하는 'assu'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1235년경에 흑해에서 바빌로니아까지 지배하던 히타이트(Hittite)왕이 에게 해의 동쪽에 있는 '앗수바(As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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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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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의 주요지점에 닿는 표착바다는 육지를 통해서 존재가 규명된다. 육지가 제공하는 만(灣), 섬, 해협, 정박지 등을 이용해 바다의 힘을 확인할 수가 있다. 대륙의 정복자들도 바다의 정복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징기스칸처럼 그렇게 염원하고 심혈을 기울였던 일본 정벌의 실패는 몽골 제국을 쇠락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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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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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개척하는 돛새가 되어 하늘에 올라 한라산을 중심점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눈을 돌려보면 동아시아의 넓은 바다가 거대한 평원처럼 보일 것이다. 중국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류큐열도 안에 갇힌 이 바다를 평원으로 생각하여 배를 말처럼 몰았던 해양인들의 우여곡절은 아마도 역사의 기록이 미진할 정도일 것이다. 삶을 위해 죽음을 담보로 바다를 건넜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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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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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사약 받은 김정"골육(骨肉)이 멀리 격리되고 친지의 소식도 아득한데, 옛날 함께 놀던 이로써 벌써 죽은 이가 많으니 하늘가에 붙인 외로운 이 몸이 얼마나 더 세상 변고(變故)를 맛볼 것인가. 삶과 죽음을 늘 먹던 마음으로 태연히 순리(順理)로 받아들이려고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문득 생각이 이에 미치면 또한 처량한 느낌이 없지 않구나.&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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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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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업신여기는 최하위 통치자「노자」에 "최선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차선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친밀감을 느끼며 칭찬하는 것이고, 그 아래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최하의 통치자는 아래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믿음이 부족하면, 곧 불신이 있게 된다. 법의 말을 잊게 되면 일을 이루고 공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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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9.02.1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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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流刑)이라는 이름의 형벌(刑罰)죄란 무엇인가. 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그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규정들을 위반한 행동을 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해 무죄(無罪)와 유죄(有罪) 사이의 사회적·도덕적 구분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봐야 한다. 죄는 사회적 위반 행동으로 작게는 도둑질에서부터 크게는 반역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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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09.02.0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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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도를 수색하다 연산군 6년(1500) 3월 20일, 왕은 다시 해랑도 수색에 대한 방법을 의논하게 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섬이 바다 한가운데 있어 사방으로 다 통하므로, 만일 먼저 사람을 파견해 보내어 정탐만 하고 군사를 들여보내지 않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이를 알고 먼저 도망하여 숨을 것이니, 지금 마땅히 그들이 깨닫지 못한 틈을 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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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