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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새벽같이 수상시장으로 가는 미니밴에 올라탔다. 어제는 물갈이를 하는지 방콕에 와서 과식을 한 탓인지 배탈 나고 설사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 파타야에 하영, 상훈, 유진, 윤미가 함께 가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나운이가 갑자기 다리가 아프단다. 아내가 병원에 함께 다녀오기로 함으로써 또 두 명이 빠졌다. 나운이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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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2.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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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엄마야!" "꺄악!" 자갈길에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경쾌하다. 우리들은 자전거를 타고 좁고 구불거리는 오솔길을 따라 열대 원시림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짧은 목재다리라도 나오면 그들의 비명 소리는 한 옥타브 정도 더 높이 올라간다. 그만큼 열대 원시림의 길은 상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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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2.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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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삭에서 배를 타고 나왔다. 나루터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로컬버스 '성떼우'를 잡아탔다. 시판돈에 있는 작은 섬 돈콘까지가 오늘 우리들의 여정이다. 시판돈은 '시'가 4이고 '판'이 천이고 '돈'이 섬이니 이른바 '4천섬'인데, 메콩 강 위에 4000여 개의 섬들이 흩뿌려져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들은 시판돈의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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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1.3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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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시인 타고르가 좋아했던 참파 꽃이 집집마다 예쁘게 피어 있다는 마을, '참파'삭으로 가고 있다. 앙코르와트와 동시대의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들은 지난밤에 비엔티안에서 '슬리핑 버스'를 탔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버스는 높고 깨끗하고 안락했다. 아이들은 처음 타보는 침대버스에 매료되어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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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1.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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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비엔티안에서 사흘을 보냈다. 산골 오지마을에서의 하룻밤 다음에 이어진 여행루트가 극적인 반전처럼 느껴진다. 이곳에는 라오스에 와서 우리들이 처음 만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와 대형슈퍼마켓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왕복 8차선 도로와 건널목 신호등이 또한 그렇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접하는 도시의 번화함이 낯설면서도 반가운 모양이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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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1.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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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국경놀이를 했다. 국경놀이란 비자만료일을 앞두고 '한국-라오스 양국의 무비자협정에 따른 15일 간의 체류허가'를 한 번 더 얻기 위해 이웃나라 태국 땅에 살짝 넘어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걸 말한다. 그 과정에서 여권에는 출입국도장과 함께 새 비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신이 났다. 대학생인 하영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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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0.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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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늡'이라는 산골마을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는 황톳길을 따라 스무 채 정도 될까 싶은 나무집들이 있었고, 돼지며 닭이며 개나 오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집과 길과 빨래줄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여행학교 아이들이 배낭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죄다 나온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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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10.0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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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다. 방비엥의 중등학교 청소년들 10여명이 아침 일찍 '미스터 리'의 치킨하우스 앞으로 나왔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등학교 1~2학년들이다. 남자 녀석들 중에는 흰색 남방에 목걸이를 살짝 늘어뜨린 아이도 있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하늘위로 띄운 녀석도 있다. 여자 아이들의 머리스타일이나 옷매무새도 나름 세련되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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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9.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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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으로 가는 날. 버스는 루앙프라방을 벗어나며 한 시간 남짓 달리는가 싶더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높아질수록 시야가 트이더니 산봉우리의 모양새들이 올록볼록 들어가고 불거지면서 이곳이 지리책에도 나오는 세계 3대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아래쪽 비탈을 따라 바나나 나무나 옥수수가 많아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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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9.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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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나 소설 속에 흔히 나오는 사건의 불안한 전조처럼 그날 루앙프라방의 아침 공기는 참으로 투명했다. 하늘은 파랬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었다. 말하자면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기에 지나치게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불안한 전조로서 우리 부부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아내는 질긴 감기에다 생리통으로 드러누웠고, 나까지도 으슬으슬 감기몸살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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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8.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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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고도(古都)다. 도시는 고풍스러움으로 그윽하면서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피부색의 여행자들로 인해 북적이는 자유로움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이 여행학교의 아이들도 들뜨게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이국 도시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어 보였다. 낯선 골목길에서도 한국에서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또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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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7.1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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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배를 타고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1박2일의 일정 중에 둘째 날 아침이었다. 강마을 팍뱅에서 모둠별로 흩어져서 하룻밤을 보내고 선착장으로 나갔을 때는 전날과는 달리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슬로우 보트의 좌석을 채운 상태였다. 그때 희경이가 선착장으로 막 뛰어내려왔다. "삼촌, 어떡해요? 성호하고 승현이가 없어졌어요. 윤미하고 나랑 먼저 가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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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6.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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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곳 라오스에서 강이란 '어머니'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도 '메콩'이란 '메남콩', 즉 '어머니의 강'이라는 단어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어머니의 품처럼 강에서 물고기를 얻고, 식수를 구하고, 벼를 기르며, 낮 동안에 수고한 몸을 담근 채 평화를 얻는다. 물길을 따라 상인이나 여행자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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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6.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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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가 내리는 아침거리로 나섰다. 길은 메콩 강을 따라 길게 누워 있었고, 마을은 그 길을 따라 한 줄로 걷고 있다. 마을 중심부는 게스트하우스나 식당과 식료품점 같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마주보고 서있는 형국이다. 천천히 마을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중국산 귤이나 사과, 바나나 등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릴 것 없이 조금씩 사 모았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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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6.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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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장장 5일의 여정을 지나 강 건너 라오스의 첫 마을 훼이싸이로 국경을 넘는 날이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숱하게 국경을 넘어봤어도 나는 여전히 이 날이 설렌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두 발로 또박또박 두 나라의 경계를 넘어설 때면 왠지 모르게 내안에서 나를 가르고 한정해온 어떤 경계 또한 넘어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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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5.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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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뚝뚝'을 타고 치앙마이의 '타페 게이트' 광장으로 나섰다. 열대의 열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안개처럼 부연 아침잠이 남아 있었다. 옛 왕국의 수도답게 성곽은 견고하고 아름다웠으며 광장에는 이른 아침의 몽롱한 기운이 그림자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첫 미션을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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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5.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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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야간 침대기차를 탄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특히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몇몇의 친구들에겐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처음이기도 한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침부터 아이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 피었다. "삼촌, 우리 기차 몇 시간이나 타요?" "음… 1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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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4.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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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의 아침. 여행 첫날이었다. 차오프라야 강이 보이는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돈'을 나누어주었다. 방콕에서 지낼 이틀 동안 각자가 쓸 여행비용이다. "이제부터는 모둠별로 너희들끼리 알아서 환전하고, 밥 사먹고, 취향에 맞게 사원이든 미술관이든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거다. 알겠지?" 돈을 받고 마냥 좋아할 것만 같던 아이들의 눈빛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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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3.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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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라오스'와 '여행', 그리고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와 나는 2011년 1월 '청소년 여행학교'란 이름으로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부터 연재할 이 이야기들은 '학교 밖 학교'인 그곳 여행길 위에서 생겨나고 피어난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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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용
2012.03.16 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