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눈 속에 있는 듯 했다. 그가 그랬다. 그때의 추위를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고. 작년 이 때, 그는 혹한에 있었다. 동광리 큰넓궤, 선흘리 동백동산, 돌문화공원 등 쌩쌩 한기가 덮치던 공간. 출연진들도 동상에 걸렸다. 너무나 징글징글했다. 기억하자. 4·3영화 '지슬'(감자)! 이 아름다움과 슬픔을 다문 4·3영화는
지난 연재
허영선
2012.12.27 17:12
-
돼지, 닭, 개를 키우던 집, 외할머닌 빨랫줄에 삶은 전복을 말리고 있었다. 그게 숙복이란 것, 커서야 알았다. 유월 스무날엔 봄 병아리 사다가 키운 닭 속에 마늘이랑 참기름 넣고 뽑아낸 진국을 어린 손녀에게 먹였다. 닭기름도 걷어내지 않은 그것을. 느글거리는 내장을 달래러 손녀는 장항독으로 달렸다. '마농지'를 손으로 북 찢어 먹어도 그 느낌은 사흘이
지난 연재
허영선
2012.12.13 18:25
-
'제주바다는 싸움터였다'부른 시인이 그였으며, '그리하여 제주사람이 아니고서는 진짜 제주를 알 수가 없다'고 노래한 시인이 그였다. 그로 인해 제주바다의 생명력은 새롭게 인식되었고, 비로소 신화의 여인들은 잠에서 깼다. 눈물로 이뤄진 제주섬. 시인의 노래는 그 소년의 바다에서 시작됐으리. "손을 펴면 지금도 수평선 같은 손금이/어린 날의 꿈
지난 연재
허영선
2012.11.29 18:03
-
식민의 시대, 네 살에 부모따라 현해탄을 건너야 했던 고향이다. 고향? 오래 살아야 고향이 아닌가. "젊은 시절부터 인간적인 신뢰감과 함께 많은 영향을 받았던 이철 선생한테 고향을 얘기하라하시면 물에 잠수하러 가면 어떤 바위에 가면 고기가 있다하는 것이 다 기억이 난다. 이것이 고향이라 했는데 나는 그것이 없다는 거지요." 오래도록 재일의
지난 연재
허영선
2012.11.15 18:26
-
역사의 상처와 평화는 함께 가는가. 그는 한쪽 어깨에 역사를, 다른 어깨에는 평화를 얹고 있다고 했다. 20년 한길. 그만하면 여기에 뼈를 묻고 있다고 해야하리. 중국 난징대도살사난동포기념관 주성산 관장. 역사학자이며 시인이기도 한 그는 난징 대학살에 자신의 생을 걸고 있다. 한때 제주 4·3의 현장을 찾기도 했던 그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 평화
지난 연재
허영선
2012.10.18 18:08
-
섬의 사탕수수가 바람에 휘날린다. 묘종을 새로 심은 어린 사탕수수는 2년 후의 수확을 기다리는 중이다. 추수기에 접어든 들판은 황금색이다. 바다 그리고 벼, 사탕수수, 새롭게 떠오른 약초 장명초 재배로 살아가는 섬의 사람들이다. 초추의 양광이 화살처럼 퍼붓는 오키나와의 최서단, 대만과 국경의 섬. 여기선 시간마저 천천히 흘러간다. 이 가을, 오키나와 요나구
지난 연재
허영선
2012.10.11 17:08
-
'사람의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 '본명으로 부르고 본명을 사용하자' 일본땅, 식민의 짙푸른 어둠을 건너온 민족인 만큼 당당하게 제 이름자 쓰자 했습니다. 오사카 소학교 강사 36년. 한결같이 민족의 긍지, 본명 쓰기 운동을 펼쳐온 1세대 민족교육의 선구자입니다. 민단 오사카 본부 교육정책의 기초 징검돌을 놓아온 재일제주인 1세. '김선생님!'.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9.20 17:49
-
님웨일즈의 '아리랑'에 눈물 흘리던 열두살 재일조선인 여중생. 온갖 말에 진절머리가 나 수묵화를 배우게 된 여고 시절을 거쳐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시선을 세계로 돌렸습니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행동하는 작가 오다 마코토. 그와 중국, 유라시아, 베를린, 미국 중앙아시아 등을 여행하거나 머물면서 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9.06 18:34
-
그때, 열세살 소녀는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야사 위주로 흥미롭게 들려주던 역사선생님의 이야기에. 그렇게, 즐거운 책읽기에 빨려들던 소녀는 서른 넘어 역사책을 만들고 있었다. 역사! 어렵고 딱딱하다고? 베스트셀러가 안된다고? 역사 대중화를 이끈, 우리 역사서 영역의 폭을 확장한 역사전문브랜드 도서출판 푸른역사. 바로 역사가 좋아서, 역사를 통해 꿈꾸던 제주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8.23 17:41
-
"두려워하지마라. 영국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2012 런던올림픽의 서막은 셰익스피어였다. 대형 올림픽벨에 실어 울린 이 문장은 영국이 낳은 불멸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더 템페스트'의 명대사였다. 그렇게 셰익스피어는 끊임없이 산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살아움직인다했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quo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8.09 17:47
-
내리사랑은 있었으나 치사랑을 못해 미안하다 했다. "한라산은 나의 수호신이다. 연인이며, 부모다. 수양의 도장"이라 했다. 깊은 연모는 바다처럼 한도 끝도 없다. 연애도 이만하면 지칠만하지 않는가. 산과 하나가 되어 한 생이 흘러갔다. 산의 영감에 기대 붓을 들었다. 산이 그리라했으니 그린다. 등반 50년 제주산악사의 산증인, 한라산 전문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7.19 17:55
-
너도나도 돈벌러 출가물질 떠나던 식민의 시절. 열일곱 소녀도 선배 잠녀들과 현해탄을 건넜습니다. 물 속 생도 잠깐. 이 바다 저 바다 누비다보니 그 소녀, 어느새 여든아홉. 그런데도 바다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은퇴? 좀 더 기다려라. 아직도 물속 그녀는 젊고 빠르지요. 물고기처럼. 전성기의 그녀처럼. 동료들도 쩍쩍 놀랍니다. 웬걸! 한수리 최고령.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7.05 18:12
-
그 소년의 길은 처음 팍팍한 먼지바람으로 시작되었다. 홀로 열일곱에 건너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의 삶. 일제강점기, 재일의 삶은 그랬다. 어둔 조국의 터널을 청년들과 함께 파야했던 강제 탄광 징용의 삶, 닥치는대로 해야했던 노동의 삶, 고향바다를 건너 일궈낸 일본 땅에서의 생은 거칠고 막막했으나 희망을 놓아본 적 없다. 끝내는 당당한 재일의 기업가로 서기까지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6.21 17:33
-
오로지 독학입니다. 물론 독학도 기본기가 있어야 하는 법. 아버지는 한국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생. 대둔산에 들어가 종일 아버지 한테서 한학만 배우다 학교에 가고 싶어 가출. 열다섯에 부산, 여수 등 고아원에서 고아 아닌 고아 생활했습니다. 당시 굴러다니는 책이란 책은 전부 삼켰지요. 생활고를 해결한 직업만 20여가지. 학벌만이 능사인 아, 한국사회!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6.07 17:57
-
열여섯 소녀가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그가 본 것은 하노이 거리를 울면서 가던 아이들과 노인들의 피난행렬이었으며, 자식 아홉을 잃은 어미였으며, 포탄이 휩쓸고 간 거리의 냄새였다. 종군기자가 됐고, 소설가가 됐다. 기나긴 전쟁. 차마 소설로도 직접적인 전쟁을 건드릴 수 없다 했다. 너무 기막혀서 눈물이 안나왔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5.24 18:24
-
강처럼 깊었고, 산처럼 험했고, 계곡처럼 구비쳤던 위대한 다산의 정신세계였다. 거기에 빠졌던 젊은 날 그의 열정이 교차됐다. 술술 구수한 전라도 맛깔로 버무려진 어투, 다산을 이야기할 때 그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당대 짓눌린 민중을 대변하던 다산에게서 좌절할 줄 모르던 진짜 민중의 얼굴을 보았다던 사람. 다산의 시 「애절양」앞에서 몸서리쳤던 사람. 가슴을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5.10 17:55
-
구체적으로 그의 아이덴티티는 제주도다. 도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 보다 김치를 파는 쪽이 더 나을지 모를 일. 더구나 베스트셀러 대박을 꿈꿀만한 책도 아닐터엔. 그러나 낸다. 그것도 해마다 10여권 안팎으로 잘 안팔리는 책들. 허나 꼭 나와야될 책들. 사회과학서적 전문 출판사. 재일한국인, 재일제주인, 제주4·3 등이 주제어다. 이 출판사를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4.26 18:19
-
아버지가 부르던 소리입니다. 죽은 자들 영혼을 달래던 소리, '회심곡'이지요. 허나 그 소리는 산자들 복받게 하는 소리입니다. 어려서부터 북망산천 불렀다는 제주 동복리 소리꾼 양금녀. "우리 제주도 어머니들은 옛날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밭에 가고 물에 들고. 회심곡은 어머니 가심(가슴) 풀려고 하는 겁니다. 스트레스 없이 다들 건강하게 살라고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4.19 16:48
-
"4·3의 부활은 우리 역사의 부활이다" "슬픔의 자유를 아는가" 카리스마 눈빛, 형형했다. 꼿꼿한 걸음걸이도, 술도, 여전했다. 이따금 모순된 제주도의 비극에 이르면 분노와 비통에 휘청여 눈을 지긋 내리감는 모습도 여전하였다. 20년 이상 몰입한 대하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고독한 반세기, 4&middo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3.29 17:58
-
뼛속까지 다감한 감성의 소년이었다. 음악은 마력처럼 소년을 사로잡았다. 그 소년, 음악을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원하던 의사가 됐고, 의사가 돼서 끝내는 그 길을 향해 걸어 간다. 경계의 재일동포 음악가 양방언. 그는 제주도가 특별한 곳이라 했다. 알면 알수록 제주도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진다했다. 하지만 제주섬이 평화로웠으면 한다고도 했다. 사무치게 그리던
지난 연재
허영선
2012.03.15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