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도대불 8기 포구·도로공사로 멸실 추정애월읍연청 복원사례 참조 증언확보 나서야민간주도방식 바람직 행정적 관심·지원 절실 도대불은 제주의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흔적이자 유산이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후 전기가 공급될 때까지 민간등대 역할을 해왔다. 현재 마을 포구에 남아 있는 도대불은 13기로 파악되고 있다. 마을의 유산
본보 취재결과 도내 현존 도대불 13기 확인대부분 일제강점기 주민들에 의해 축조 사용원형과 유사형태 6기 체계적 관리방안 필요 제주도 해안마을 포구에는 옛 등대로 불리는 도대불이 남아 있다. 과거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기초적인 생계수단인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흔적이자 유산이다. 도대불은 선박의 항로를 알려주는 신호유적이라는 점에서 등대와 기능이 같다. 하지만
2009년 5월 애월읍연청 주도 복원 작업기록 없지만 지역주민 증언 토대로 축조포구와 멀리 떨어진 언덕위에 설치 특징복원전 사진자료로 일제강점기 건립 추정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는 해안과 접해있는 마을로 제주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16㎞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이 접해있는 만큼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는 농어촌마을이다. 1500년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1962년 기능 잃은 방사탑 활용 도대불 축조관청주도로 건축된 근대식 우도등대와 구분주민 필요에 의해 점등 삶의 흔적 고스란히 제주시 우도면 조일리(朝日里)는 우도에서 가장 먼저 아침 햇살을 맞이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터가 있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해안은 암초가 많아서 어류가 서식하기 좋은 어초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변
1920~1930년 두모리 선창에 축조 추정돼사다리꼴형태 안정감 추구 어부들이 관리1973년 마을에 전기 공급될 때까지 사용방어유적 복원과정에 도대불 분리해 신축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는 16세기 말 설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해변에 위치해 제주시 서부권역의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지형적으로 땅을 파지 않아도 물이 풍부한 지역이어서 일찍
당초 마름모꼴 형태 도대불 풍파로 유실1960년대 옛 북제주군 지원으로 재축조입출항 어부들이 관리 1972년까지 사용표지석에 원형 축조시기 기록 고증 필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는 넓은 목장지대와 청정한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로 주민 대다수가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해안마을로 반농반어의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다. 김녕리 앞바다에는 다양한
1950년대 구엄포구 동쪽 암반위에 축조상자형 2층 형태 조업 없는 날에도 점화애월읍연청 2009년 새로운 도대불 신축전 어촌계장 증언 토대로 원형복원 시도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는 신라 말엽 내지 고려 중엽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식수 확보나 농·어업 활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원천 상류와 하류를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
1930~1935년 애월포 선창가 암반에 축조현무암 다듬어 바른층쌓기 사다리꼴 형태관망대 기능은 못해…마을진흥회가 관리2003년 새롭게 복원 지역 유산으로 인식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는 삼국시대에 촌락이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민들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지하용천, 연안의 해산물을 기반으로 농업과 목축, 어업을 영위하면서 생활권을 확대
귀덕2리 도대불 1930년경 축조 원형 유지원통모양 형태 전기공급 전까지 등대 역할귀덕1리 복덕개포구서도 도대불 흔적 확인일제강점기 건립 이후 1960년대 훼손 추정 현재 도내에 남아 있는 여러 도대불 가운데 원형을 잃지 않은 것으로는 귀덕2리 도대불을 꼽을 수 있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는 1430년대 촌락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안에 위치하고 있
선창 축조 이후인 1942년 주민들이 건립한번도 사용 못한 도대불로는 도내 유일현무암 이용 상단부 갈수록 갸름한 형태여러 차례 포구공사에도 과거 모습 유지 서귀포시 대포동은 바다에서부터 한라산 기슭까지 주민생활에 필요한 생업환경이 구비된 곳으로,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설촌 당시 바닷가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거주했기 때문에 어촌마을로 생각하는 사람
1920∼1930년대 포구공사 당시 축조 추정전기 공급 이전까지 어선 입·출항 때 사용상단부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 '원형 유지'보목마을 생활상 간직…체계적 관리 필요 서귀포시 보목동은 제주도 본섬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남해로 돌출해 있는 해안취락이다.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포구가 형성돼 있어 일찍이 마을사람들이
포구 확장공사로 방파제 2곳에 도대불 축조일제강점기 때 시설 추정 '잠망등'으로 불려1970년 전기 공급 전까지 사용 2004년 철거제주시 2007년 복원 했지만 옛 모습과 달라 제주시 용담2동은 제주시 구도심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용천수가 솟던 '돌새미'(물동산)를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돼 농업과 어업으로 생활을 했다고
1915년 북촌리 뒷개마을 선창 서쪽에 건립전기 공급된 1973년까지 '등대' 역할 수행일부 보수 불구 옛 모습 남아 역사적 가치제주어업 발전사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는 과거 제주도의 대표적인 해촌형 부락으로 불렸다. 지금처럼 생업이 뚜렷하지 못했던 시절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됐다고 한다. 어업이 발달했던
일제강점기 포구조성 이후 도대불 축조 추정'돌등대'로 불리기도…화물선 안전 입항 목적여러 차례 파손 주민 힘으로 복구 일부 변형최근 하단부 콘크리트 포장 등 설자리 빼앗겨 과거 제주시 한경면 고산1리 자구내포구에도 어두운 바닷길을 밝히는 도대불이 있었다. 포구가 만들어질 당시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병자수호 조약 계기로 국내 첫 등대 건립제주는 민간등대로 불리는 '도대불' 형태1910년 이후 도내 항·포구에 16기 설치 추정 원형이나 훼손상태 연구·조사 없이 방치 과거 제주도민들에게 어업은 가장 기초적인 생계수단이었다. 토지가 척박해 농산물 자급은 충분하지 못했다. 어업을 통해 얻는 수산물이 가계를 이끌어가는 유일한 수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