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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라면 '해녀'를 생각하고 '해녀'하면 제주도를 연상한다. 그러나 '해녀'에 대한 이미지는 그릇되게 아로새겨질 때도 없지 않다.…"해녀가 된 동기란 게 따로 없습니다. 그저 바다와 이웃한 섬의 딸들에게 어머니는 자본 없이 손쉽게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방법을 바다 생활에서 구하게 한거죠" (제남신문. 1967년 11월 9일자. '해녀조합장 김은씨 테왁 벗삼아 20년 기사' 중) 잠녀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40년도 더 전 신문에까지 실렸던 것이 '사실'이 조금씩
해녀
고 미 기자
2011.06.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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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아야, 이 할망신디 무신 들을 말이 이성 영 헴시니. 난 말다"(이 할머니한테 무슨 들을 말이 있다고 이렇게 하느냐, 난 싫다) 매번 듣다보니 이제는 이런 말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어쨌든 잘 왔다"하는 소리로 들린다. 며칠째 바다에서 밀려온 해무로 인적이 뜸한 사계항 마라도 잠수함 선착장에서 '당번'할머니들을 만났다.톳이며 천초 작업은 일찌감치 끝났고 해수 온도 상승으로 예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빨라진 소라 금채기에 잠녀 할머니들의 고무옷은 볕에 잘 말라있다. 아직 물기가 여전한 것은 잠녀 체험용 뿐이다. 해녀의 집과 용머리 좌판 외에도 요즘은 체험 도우미로 잠녀 할머니들의 하루가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해녀
고 미 기자
2011.06.0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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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조례' 제정 2년 반 만에 자리 찾아…전승·보존 5개년 계획 수립정체성 확립 등 정형화 과제, 국가 유산 목록 포함 등 작업 서둘러야제주특별자치도가 '잠녀문화의 세계화'프로젝트를 천명했다.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희소가치가 높은 잠녀만의 고유한 공동체어업문화를 도·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나아가 유네스코 무형문화
해녀
고 미 기자
2011.05.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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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제1회 자율관리어업 전국대회장. 바닷바람에 잔뜩 그을린 여장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크다' '억세다'의 느낌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였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다와 부대껴온 이의 내공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강했다. 고송환 성산어촌계장(65)은 그날 자율관리어업 성공사례 발표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조금은 모자라고
해녀
고 미 기자
2011.05.1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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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머니'들의 기억을 더듬는 사이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고령의 잠녀가 물질을 하는 도중 사망했다는 뉴스는 해마다 끊이질 않는다. 다행히 함께 작업하던 잠녀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찾아 헤맸고, 그 마지막을 놓치지 않았다. '조금만 빨리 알았어도…' 하는 아쉬움에 숨비소리보다 깊은 한숨에 한 며칠 바다 쪽은 돌아보지도 않을 거란 걸 알기에 더 마음이
해녀
고 미 기자
2011.04.2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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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표정이 환하다. 지난 겨울 칼바람과 강추위에 호되게 당했던 것에 비하면 바다가 건네준 것들이 풍성하다. 4월 구좌읍 하도리 바닷가는 톳이며 우뭇가사리 작업으로 쉴 짬이 없다. 조를 나눠 작업을 하는 것이 흥이 난다. 바다가 있어 가능했던 일들이다.
해녀
고 미 기자
2011.04.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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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토요일 오후 할머니의 손은 좀처럼 쉴 틈이 없다. 이웃에 살던 친척이 병원에 입원하며 한시도 걱정을 놓지 않아 대신 쪽파를 손질하고 계신 참이다. 검은 흙이 배긴 손톱이며 손마디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올해 88세. 2005년 최우수 해녀상을 받았던 이정현 할머니가 작업하는 밖거리 한 쪽 벽에는 검은 고무옷이 걸려있다. "이젠 물에 못 들어. 작년에 수술을 해서…"하는 할머니의 표정에 아쉬움이 비친다. "(날씨가)이만하면 물에 들엉(들어가) 작업도 해실건디(했을텐데)". 60년 넘게 온몸에 배긴 바다는 좀처럼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해녀
고 미 기자
2011.03.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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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돈 제주대 교수 1999년 민속원 통해 제주 해녀 다룬 첫 개설서 「한국의 해녀」발간1960년대 수산노동자에서 70년대 자유직업인, 80년대 사회문제적 접근 시작 등 계속적 연구 필요제주에는 '제주 잠녀'가 있다.산업 역군에서 제주 문화·관광 아이템을 넘어 무형문화유산 논의까지 제주 잠녀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 존재감에
해녀
고 미 기자
2011.03.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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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최근 제작 「독도주민생활사」에 제주잠녀 독도 물질 의미 담아독도영유권 문제 한 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산증거로 가치 평가 잊을 만 하면 불거지는 독도 영유권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다.이르면 이번 달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역시 이런 논란에 불을 지필 것으로 예상된다.'독도는 일본의 시마네(島根)현
해녀
고 미 기자
2011.03.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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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기 시작해 2010년까지 수료생 100여명 배출…해외 관심 높아'젊은'잠녀 수혈보다는 진정성 갖춘 '알림이' 양성, 잠녀문화 보존에 무게 걸음마를 떼고 부터는 저절로 바다로 발이 향했다. 누가 '일부러'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어느 샌가 물을 차고 바닷속을 헤집는 일이 익숙해진다. 묵직해진 망사리에 힘들었던 작업에 대한 기억
해녀
고 미 기자
2011.02.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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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유 등으로 타향살이 감수…제주 근·현대사 한 페이지 장식현재 2400여명 물질 중, "기회만 된다면 고향 바다 누비는 게 소원"두 아들을 앞세우고 "너무 오래 살았다"는 올해 91살의 김화순 할머니는 아직도 바다에 간다. 울릉도 바다는 제주보다 훨씬 차다. 한 계절이 늦은 바다 사정을 감
해녀
고 미 기자
2011.02.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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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일본인 어업조합 서기와 중간 상인들이 짜고 착취와 횡포가 심했던 시기. 급기야 하도리 잠녀 대표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순효, 김계석 등 대표들은 선생님들과 일을 벌이기로 했다. 일본 순사들 몰래 바다로 나서기는 했지만 김녕인가 동복(골막)부근에서 파도 때문에 되돌아오고 말았다. 다시 1932년 1월 7일 세화오일장. 하도리 잠녀 수백명이 모였다. 연설도 잘 하고 글씨도 잘 썼던 김계석(김옥련 생전 증언)도 이때 "너희들이 총칼로 대항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대항한다" "일본은 물러가라" 등등의 내용으로 외쳤다.(제민일보 2007년 11월 16일 7면 허영선이 만난 '사람'-제주해녀항쟁의 주역 '95세 최고령 생존자 김계석 할머니'중)
해녀
고 미 기자
2011.01.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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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제주 삶의 보고로 제주 안보다 제주 밖 관심 높아‘제주잠녀문화’구심점 역할 불구 기능 강화 소원…역할론 부각 “어 저기 우리 할머니, 할머니다”한 무리 가족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우연히 찾은 할머니의 얼굴에 한껏 고무된 어린아이 뒤로, 조금은 무거운 표정의 아버지와 낯 선듯하면서도 존경의 마
해녀
고 미 기자
2011.01.0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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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어찌 보면 섬에서의 시간은 멈춰있다 느껴질 만큼 느리다. 변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뿐이다. 섬 제주와 뭍의 중간에 있는 추자도도 마찬가지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못하지만 섬을 거쳐간 많은 이들이 달라졌다 한다. 잠녀들의 숨비소리가 희미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고, 그 힘든 일을…. 이제는 섬사람도
해녀
고 미 기자
2010.12.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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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녀 할머니의 이야기는 시간을 오간다. 다른 지역들과 상관없이 세월을 먹은 것은 추자도도 마찬가지다. 시간 속에서 본섬(제주도)서 육지를 오가는 중간이란 의미는 오간 데 없다. 일제 강점기며 4·3이며 한국전쟁까지, 거의 비슷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지탱해온 섬에서 본섬 잠녀들보다 한참을 늦게 고무옷을 입은 것이나 하나 둘 섬사람은 떠나고 뭍 사람들도 섬이 채워지는
해녀
고 미 기자
2010.12.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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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을 모르던 열 일곱 섬 처녀는 미역을 조물러 사수도에 갔다가 물질을 배웠다. 동네에서 무레질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어머니는 딸에게는 무레질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 일 배우지 말고 섬을 떠나 살라고 바다로 따라 나서는 딸의 등판을 몇 번이고 떠밀었다. 어머니 눈을 피해 재미 삼아 시작한 무레질은 그대로 굴레가
해녀
고 미 기자
2010.11.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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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초등학교로부터 섬 작업 권리 사고 섬 쓰레기 수거 등 충실한 관리역 여전상군도 버거운 섬 속 섬 작업…다음 장담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만 더해‘섬에서 살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빈손’을 허락하지 않는 섬은 계속해서 잠녀들의 발을 붙잡았다.“이번만”을 외치다가도 다시 사수도
해녀
고 미 기자
2010.11.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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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최북단 추자도 부속 무인도…완도군과 ‘소유권 분쟁’ 2008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해결바다 의존도 높은 추자 잠녀들에게 큰 존재감, 지금도 해남 등 4명이 ‘섬지킴이’역할 수행‘사수도 표석’ 중에서(예초리사무소 앞 소재) 하추자에서 동쪽 36㎞ 거리에 있는 넓이 138,701㎡
해녀
고 미 기자
2010.11.0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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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목숨 구하고 거뒀던 삶 의지했던 바다 이제는 떠날 준비중해군기지 건설 영향 대포마을도 흔들…보상 앞서 '가치' 알아주기를 인생 중반을 넘긴 세 모녀의 대화는 좀처럼 끝을 보이지 않는다. 훨씬 앞을 살고 있는 어머니도, 잰걸음으로 그 뒤를 따르는 두 딸도 바다 이야기만 꺼내면 한치의 양보도 없다. 보태고, 거들고, 확인하는 동안 방
해녀
고 미 기자
2010.08.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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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군·해녀 노래 잘하는 것으로 유명…어머니 따라 대마도 물질하며 소리 배워지팡이 짚고 물질 나서 '막댕이 할망'애칭, "하늘우의 절만 안 들면 물드레 갔져"언제나 말없이 안아주던 바다였다. 그랬던 바다가 변했다. 언젠가 부터 그토록 자신의 안을 더듬어대던 잠녀들을 하나 하나 품기 시작했다. 하나둘 잠녀들이 떠
해녀
고 미 기자
2010.07.28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