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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가면, 불망의 친구 묘를 찾을 것이라 했다. 그는 읊는다. "고향하면 한번은 가고 싶다. 남의 나라에. 아니 내 고향에". 시 100수를 외는 사람. 시와 서예와 노래와 악기에 능한 사람. 재일 사회의 담론이었던 재일 종합 문예지 계간 「삼천리」지를 13년간 낸 발행인. 재일동포 시인이자 서예가 이철. 한 시대의 전설, 이철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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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12.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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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죽을때까지 4·3위령제를 찾겠다고 했다. 지난 2008년, 4·3 60주년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털털 웃음이었다. 자비를 털어 제주도에 온 47명의 일본인들과 함께였다. 다음해, 또 다음해에도 그의 얼굴은 보였다. 그들은 돌아가서 정식명칭 ‘제주4·3사건을 배우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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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12.16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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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에 독일로 간 간호보조원이었다. 유치원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했던 70년. 외롭고 쓸쓸해서 홀로 자기를 위안했다. 그림이다. 그런 그가 어느날 화가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행복해진다했다. 독일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열광했다. 유머러스하고 기분이 좋다한다. 비결? "그러니까 저는 제 식대로 한 것 밖에 없어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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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11.2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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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아버지의 주먹이 날아왔다. 4·3이라니! "「까마귀의 죽음」속 사건은 사실인가요?" 묻는 고2 아들에게. 긴 침묵. 아버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생의 끝까지. 그리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뼛속까지 상처인 고향의 4·3, 그 부호를 소년이 알기까지는. 그 부호, 후일 그의 길에 어떤 지침이 되었으리. 이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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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11.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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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비밀을 꺼내듯 가방속에서 족은 눈을 꺼내더군요. 참으로 오래된, 십대에 쓰던 물안경, 족은눈이네요. 흐린 눈에 써보이는 이 왕년의 상군 제주해녀. 직업의식으로 자식들 키워낸 자존심이지요. "제주에서 청진까지, 중국까지 갖고 갔어. 이것 볼 때 마다 고향생각이지뭐." 딸 다섯에 아들 하나. 자식 덕에 호강한다는 그녀, 2년 전에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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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10.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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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힘입니다. 옹기의 탄생은. 화산섬 제주옹기. 사람들은 그 앙증맞은 둥근 몸에서 볼록볼록 숨을 쉬는 것이 보이는지 숨쉬는 항아리라고 부릅니다. 어떤 유약도 칠하지 않고 자연발색. 보기만해도 매력적인 질감.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 한때는 '옹기쟁이'라 불렀습니다. 팍팍한 밭농사하며 배운 불대장. 가마 안의 불의 모양, 불의 색만 보면 압니다. 빨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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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10.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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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드라마다. 영화적이다. 물속은 자유였다. 연기가 아닌 해녀체험. 첫 물질부터 선수였다. "아예 여기서 해녀하지" 소라와 성게를 따는 그를 보고 귀덕리 해녀 선생님이 그랬다. "바닷속은 정말 놀라웠어요. 아름다웠어요. 바로 성게를 탁 까서 해녀 할머니가 손바닥에 올려주었는데 그것이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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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9.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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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갚아도 모자라다했다. 제주삼촌들 한테 받았던 그 깊은 정을. 그러한 제주삼촌들 마음처럼 제주도가 그렇게 있었으면 했다. 아무리 변해도 공동체 마음만은 남았으면 좋겠다 했다. "기꽈?" "무사마씀?" 한국말은 제주어 '헷수다'부터였다. 제주말이 표준어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여자. 그에게 제주도는 또하나의 고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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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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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댁에선 고향 제주도의 성묘를 위해 온가족이 날아온다. 동경, 오사카, 미국, 서울에서. 이 거국적 가족행사는 8년전부터다. 아들딸 손자손녀 며느리 많게는 서른두명에서 적게는 스물여섯 명까지. 이 대부대의 총수는 오사카 이쿠노구 코리아타운의 재일동포 강안자 할머니. 죽을둥 살둥 세 번의 도전끝에 격랑의 현해탄을 건너야했던 열다섯 그 소녀. 이제 3대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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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8.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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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류였다. 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죽음의 공간으로 삼았던 제주해협은 삶의 무대였다. 섬은 환속한 한 청춘을 버리지 않았다. 파도가 잠들게 했고, 파도가 아침을 열었다. 제주도는 개안의 섬이었다. 제주도 벗들과 실컷 술을 마셨고 부족한 안주는 비린 파도로 채웠다. 그도 부족하면 별도봉의 벼랑 아래 너럭바위에 앉아 수평선을 들이켰다. "나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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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8.1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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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항일의 섬 우도. 이 섬엔 역사가 된, '해녀의 노래'가 흐릅니다. 우도 천진항 선착장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에 새겨진 그 노래. 한반도, 일본, 중국까지 떠나던 해녀들 마음의 위안이던. 미완의 혁명가 아버지의 노래입니다. 아버지 떠난 길에 태어난 유복녀. 잠녀(해녀)가 됐습니다. 어머니 역시 상군 잠녀였지요. 너른바당 뱃물질 거침없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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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7.2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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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곤충처럼, 말처럼, 노루처럼 그렇게 다녔다. 흙땅을 누볐다. '한라산의 노루'라 불렸다. 그 남자. 그에게 제주도는 섬 전체가 다큐멘터리다. 날아다니는 새 부터 땅 속 굼벵이까지 찍었으니. 잠녀부터 눈보라 속 지들커를 등에 진 노인까지 수없이 많은 제주사람이 그에게 찍혔으니. 어디 그처럼 제주도를 카메라로 지켜낸 이 있을까. 한국사진기자상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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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7.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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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뒤의 미소라했다. 슬픔마저 아름다운 자연이 보듬어 주는 것 같다했다. 화산섬 제주도, 그의 선조들의 섬 모리셔스와 많이 닮은 아픈 역사의 땅. 하여 서글픔 뒤의 기쁨 한조각, 희망을 노래하라했다. 그가 왔다. 또다시. 날다가 아름다운 곳에 앉은 새처럼. 미지의 대지를 찾는 프랑스 문학의 살아있는 신화. 그의 행로 안에 제주섬이 있었다. 2008 노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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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6.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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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여, 내가 네 이름을 불러주마. 어느해 한라산에서였다. 키 작은 꽃들에 바싹 키를 낮춰 사진을 찍고 있던 이 식물학자를 만난 것은. 교사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고향 한라산이 품은 식물들은 이 땅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종들이라 했다. 두메대극, 바위수국, 새비나무, 큰천남성, 섬매발톱나무, 한라솜다리, 호자덩굴. 흰닷딸기&hel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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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6.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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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우린 쉽게 잊는 건가? 해방공간, 신촌 바다 위로 동동동 떠오른 나무조각들. 아이들은 그 조각들을 붙잡고 헤엄을 쳤었다. 신한은행 전신인 일본 전 관서흥은 이사장 이정림. 그에게 유년의 기억은 또렷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아하! 그게 모교 건물 목재들이었음을 안 것은. 자신이 태사른 땅에 중학교를 짓는다며 한 재일동포가 고향에 보내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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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5.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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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아부오름 분화구 위로 인간들이 서 있다. 나무처럼. 파노라마로 찍은 이 사진가의 눈은 파랗다. 부리부리한 눈매, 익살, 진지한 표정이 일품인 '한국통' 프랑스 사람. 한때 한불합작 영화의 자막엔 그의 이름이 반드시 올려져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촬영 때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영화가 거의 없다는 말씀. '불란서 한국문화원!' 프랑스에 살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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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5.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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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에 등반 한라산 남성·여성 양면성 갖춰 엄대장, 그에게 한라산은 가슴 뛰는 이름이다. 고교 졸업 10대 후반에 처음 한라산을 만났다. 산에 다니는 선배와 함께였다. 또다른 세상이었다. "대한민국에도, 더구나 섬에도 이런 큰 산이 있구나, 멋진 산이 있구나 매우 인상 깊었죠.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이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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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4.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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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 때, 애깃배 맞췄습니다. 진통으로 초저녁부터 온 방안을 데굴데굴 굴렀으니. 다급해진 남편은 차디찬 새벽, 산파를 데리러 바람처럼 휑하니 나갔지요. 그리곤 감감. 그 광풍의 4·3시기였지요. 시어머니와 대구 형무소 면회를 갔으나 남편은 이미 이세상 사람 아니라했습니다. 생이별 63년. 그날 죽음의 문턱에서 세상에 나온 그 딸아이도 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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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3.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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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가슴을 뒤흔든 것은 그때였다. 세계적인 노익장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고2. 제주시 관덕정. 미군공보원이 상영한 기록영화 화면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불멸이었다. 멋졌다. 전국 최초의 순수 아마추어 밴드 18년. 그 밴드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 김승택. 그 역시 이제 노익장 지휘자 소리를 듣는 70대. 제주도의 시민밴드 한라윈드앙상블을 이끌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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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3.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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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날카로운 바람이 뚫고 갔던 것은 분명하다. 젊은 날의 이 혁명 시인을. 아무도 하지 못할 때였으니, 그가 쳤다. 그는 건너뛸 수 없는 우리의 역사다. 억압의 황량한 시대를 건너야하던 시기, 그는 늘 앞에 선 자였다. 유창한 언변가였다. 그로 인한 고문과 혹독한 옥살이. 시 한편으로도 3년. 갇힌 방에서 그렇게 흘러갔다. 수사였던 아름다운 청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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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2.1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