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실패한 혁명가라고 했다. 식민지 시대의 아들로 태어나 황민화교육을 받은 세대, 현대사가 날카롭게 관통한 삶의 길. 그는 그가 가장 잘한 선택은 역사를 선택한 것이라 했다. 시대를 앞서간 근대사상 학문의 길, 사상이란 '인간해방'이라 했다. 인간을 위하여 있는. "역사는 나를 위해서 행복이거든. 죽을 때까지 할 것이 있으니까."
지난 연재
허영선
2010.02.18 18:33
-
성성했다. 5년만에 만난 그는. 민족 정서가 담긴 그림에 대한 열망도. 민족이 화목하게 사는 세상을 열망한다던 그의 꿈도 여전히 유효했다. 한국전쟁 시기 쪽배 타고 검은바다를 건너던 그 소년의 마음이 아마 그러했으리. 그때 그는 화가를 꿈꾸던 열다섯 살. 대마도를 거쳐 요코하마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러운 여정. 누구나 숨어서 바다를 건너야했던 밀항의 시절이었으
지난 연재
허영선
2010.02.04 18:45
-
"이거 받아 앉으민 아무 생각이 엇어마씀. 코 걸어야주 허는 마음 뿐이라마씀. 이제는 나이들어가민 학교 가주만 옛날엔 갓일만 베완. 우리 옛날엔 밭 하나 물려주지 말앙 기술을 베와주렌 허여십주" 그 옛날, 동생을 돌보다 아홉 살 되면 갓일하는 일청에 나가라 했습니다. 그때부터 잡았던 바농대의 삶. 올해 여든여섯, 그녀 송옥수. 고분양태 제
지난 연재
허영선
2010.01.21 18:57
-
그때 처음 품은 거였다. 한국에 대한 열애는. 가난하지만 정이 넘치는, 한국의 풍경이 살아있던 1966년. 그렇게 처음 만난 한국땅은 그가 생의 끝까지 있고 싶어 하는 땅이 되었다. 마침내 자유! 한국땅을 밟은 날은 2006년 10월1일. 독일 함부르크대학의 교수직에서 은퇴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일본학 중국학만 있던 독일의 대학에 한국학을 만들고, 30여
지난 연재
허영선
2010.01.07 20:19
-
영화란 그런 것이다. 누룩같이 퍼지는 강한 힘이다. 결국 영화란 인생이다. 한국영화계의 원로 감독 임원식. 그에게 영화는 삶이다. 그는 영화를 떠나서 살 수 없다고 했다. 영화? 말 못하는 희열이란 게 있다. 그가 그랬다. "영화감독은 내가 던진 메시지를 누군가가 스크린을 통해 그것을 느낄 때"가 그때라고. 한국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내는
지난 연재
허영선
2009.12.24 19:21
-
선장의 꿈을 품고 통통배를 타던 열일곱 소년 어부. 섬속의 섬 추자도에서 태어나 이십대에 북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누볐다. 멀고 먼 바다를 돌아오면서 겹겹층층 파도같은 곡절이 어찌 없다하겠는가. 그 먼 항해길에 지친 그를 따뜻하게 받아준 것은 고향 섬 추자도. 겁 없이 늘 도전하는 추자도 바다사나이 이정호. 그는 어선주협의회를 만들어 추자어민들의 소득을
지난 연재
허영선
2009.12.10 19:44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수용소에는 수백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그 벽에 수백마리의 나비를 새겨놓았다.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 앞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간절함이었다. "어릴 때 아름다운 나비를 보면 숨이 멈추는 듯한 그 어떤 황홀감이 몸 속에서 전율하는 것을 느끼곤 했다"고 한 이는 헤르만 헤
지난 연재
허영선
2009.11.26 19:02
-
"혼자만의 아침을/ 너는 바라서는 안된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절대 어긋날 리 없는 지구의 회전만을/ 너는 믿을 일이다./ (생략)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게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 지점이 지평이다./ 바야흐로 지평이다./머얼리 그림자를 떨구며/기우는 석양에는 작별을 말해야 한다./ 새로운 밤이 기다린다." (
지난 연재
허영선
2009.11.12 19:06
-
그 섬엔 7200살 먹은 '성스러운 노인'이 산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섬. 제주도의 5분의 1밖에 안된 일본열도의 남쪽 외딴섬, 야쿠시마. 산과 강, 바다가 조화로운 이 섬은 1993년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명해졌다. 얼마전 그 섬에서 한 원로 환경운동가가 한라산생태연구소의 세미나차 제주섬을 찾았다. 효도 마사
지난 연재
허영선
2009.10.29 19:02
-
돌가루가 날렸다. 젊은 석공이 큰 암석을 들어 얹히자 노인은 가뿐하게 작은 돌을 돌틈에 끼워 넣는다. 돌은 아귀가 딱 맞게 들어앉는다. 화산섬 제주의 거대한 암석을 노인은 정과 망치 같은 연장으로 딱딱 쪼갠다. 돌의 결을 알고, 돌의 성질을 알기 때문이다. 지천으로 널려진 현무암. 바람도 휭휭 통과하는 제주돌. 그는 소년시절부터 석수가 되었다. 이제 황혼이
지난 연재
허영선
2009.10.15 19:28
-
'해녀 양씨'입니다. 제주의 작은 어촌마을 골막바당에서 애기잠수가 되었습니다. 4·3의 와중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가족사는 분단 한국의 얼굴이지요. 당시 87세. 장편 다큐 '해녀 양씨'. 드라마틱한 여인의 생은 한국과 일본에 알려졌고, 그녀의 슬픔은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그 여인, 해녀 양씨는 올해 94세. 그녀의 발이 되어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9.17 20:27
-
어둠 속에서 쇼팽의 '야상곡'이 흘렀다. 고요했다. 객석은 숨죽여 그가 이끄는대로 이끌려갔다. 피아노 선율은 폭풍같은 삶을 거쳐온 자의 손끝을 타고 물흐르듯 흘러갔다. 지난달 제주 보오메꾸뜨르 부띠끄호텔이 마련한 무료자선음악회에서였다. 열살에 데뷔, 이십대에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에 오른 서혜경. 사람들은 '신이 내린 피아니스트' '피아노의 여제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9.03 18:56
-
그의 망막은 늘 인간의 시선에 꽂힌다. '종이거울속의 슬픈 얼굴', 가난의 뒷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사진 인생 50년. 렌즈 속 '인간'과 함께 시대를 살았다. 길고 우둘투둘한 여정. 첫번째 「인간」이 나오는데 걸린 세월 10년, 그 후의 시간 역시 모두 '인간'에 헌사했다. 흡사 교향곡 작곡가처럼. 그는 사람만이 희망임을 믿는다. 불멸의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8.20 19:43
-
70년대 일본이 한국의 아픔에 공감해준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한 시사잡지였다. 일본의 지성이라면 한권쯤 끼고 다닌다는 이와나미서점이 발간하는 월간 「세카이(世界)」. 우리에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함께 벌여준 진보적인 잡지로 기억된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 열정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일조했던 것.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8.06 18:35
-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순간을 춤추듯 살았다." 뼈도 굳고, 근육도 굳은 스물일곱에 춤을 시작, 서른 넘어 데뷔했고, 서른여섯에 구도의 길 인도로 떠난 여자. 나이 마흔 넘어 열두살 연하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열정으로 인생에 몰입하다 돌아본 그녀 나이 이제 70. 그는 여전히 세계 무대에 선다. 순례길에 스승도 만났으나 그의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7.23 20:19
-
'늙음' '죽음'은 불온한 언어인가. 철학한다는 저 프랑스에서도 70년대까지 금지된 주제였다. '늙음'은. 등장 인물에 할아버지, 할머니 한 쌍을 집어넣었다가 만화 한편을 온통 뜯어고쳐 다시그려야 했던 만화가가 있었다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개탄했었다. '메멘토모리!' 라틴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웰빙(Well-Being)'이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7.09 21:26
-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사랑이죠” 사제의 우리말 답은 간명했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중산간에 성 이시돌목장을 이룩한 사람. 저 유명한 문호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를 탄생시킨 나라 아일랜드에서 온 사제. 강론하면서 피아노도 친다. 유머넘치는 이 여든의 사제를 사람들은 목자 혹은 성자라 부른다.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 53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6.25 20:08
-
30년 앞을 내다보는 도시계획을 연구하던 사람이 어느날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오래된 신문을 뒤져 깨알같은 글자들을 읽어내고, 옛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렇게 뒤지다보니 잘못 알려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들, 알려져야 할 것들이 숨어 있었다. 한국인들의 하와이 이민사. 물론 철저하게 조사 연구하다보니 소설보다 재밌다. 1993년부터.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6.11 20:37
-
그건 완창이었다. 신의 내력담, 제주무가 본풀이 열두본에 하나를 더했다. 모두 열세편에 달하는 일반신 본풀이. 하루 네시간. 닷새에 걸쳐 구송하는 동안 그녀의 기는 펄펄 살아있었고, 낭랑한 음색은 꺾일줄 몰랐다. 지난해 4·3 60년에는 큰 굿, 해원상생굿을 도맡아 애절하게 신의 강림을 청했던 사람. 올해도 4·3해원상생굿을 집전하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6.04 20:05
-
한문학자 정민. 그는 지금 문화사 연구자로 이동하고 있다. 학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그는 문헌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의미있는 그런 자료들이 말하는 진실을 외면할 순 없지 않나하는 생각에서다. 그의 관심사는 넓고 깊다. 감귤, 차, 새, 호랑이 등. 우리나라 최초의 차전문서 「동다기(東茶記)」를 다산 정약용이 썼다는 풍문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내기도
지난 연재
허영선
2009.05.1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