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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봄이 왔다지만 아직도 봄은 멀리 있는 듯 하다. 지구 곳곳에서는 질병과 자연재해와 전쟁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봄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이 말은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20세기 대표적인 시의 하나로 꼽히는 「황무지」는 현대 문명에 갇혀 생명의 기운을 잃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20세기의 벽두에 치러진 세계1차대전은 수많은 생명이 상실된 형언하기 어려운 비극이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현대인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굴레를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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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4.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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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왔다. 산과 들 곳곳에서 봄의 소리가 들린다. 코로나라는 질병은 끈질기게 사람들을 옥죄고 있고, 지구 어느 구석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가고, 세상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어둡고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우리들 곁으로 다시 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밝고 건강한 생명성을 보여주는 것은 어김없이 나타나는 봄꽃과 나무들이다. 「비밀의 화원」, 「타샤의 정원」, 「소공녀」와 같은 동화의 삽화를 그린 화가이자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타샤 튜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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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3.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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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른바 해묵은 젠더 갈등이 새롭게 심화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이 같은 젠더 갈등은 오래전에 제기되어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서구 페미니즘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949년 세상에 나온 「제2의 성」과 작가 보부아르를 지금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이 책의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 책을 현재로 불러오는 이유는 이 책이야말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남성들의 권위가 아직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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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3.1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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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공감하고 슬퍼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질병과 자연재해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하고 있는가. 이 지구상에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가 서로의 고통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무자비한 전쟁과 악랄한 정치와 코로나와 같은 질병에 둘러싸인 삶의 상황에서 고통받는 타인에게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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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2.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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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남은 반드시 이별을 예비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대로 누군가의 만남에서 이별은 필연적이다. 인간의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으로 구성되며 이것을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인연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사물과 일에 의해 관계되는 연줄을 의미한다. 일상적 삶에서 우리는 싫든 좋든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매일의 순간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관계와 맺음의 단절을 의미하는 이별은 고통이다. 그렇지만 이런 고통스런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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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2.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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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는 텅 비어 있다. 겨울나무에는 지난여름의 푸르름이나 가을의 풍요로움은 없다. 푸르던 잎은 거름이 되고 열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새들에게 빌려줬던 가지도 빈 둥지가 되었다. 그러나 겨울나무는 슬프지 않다. 곧 새봄이 오면 지금 텅 비어 있음이 더 많은 것을 채우기 위한 예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때로 공허해야 한다는 것을 때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때로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겨울나무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생명은 단지 한 개체로서의 생명이 아니다. 겨울을 견딘 나무는 봄이 되면 잎과 꽃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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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1.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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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모두 얼굴을 잃어버렸다. 마스크에 덮힌 얼굴은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비단 코로나 시대가 아니어도 현대적 삶의 상황은 갈수록 획일화되고 단편화되면서 인간성 상실을 낳고 우리를 '얼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메마르고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묻게 된다. 나의 진짜 얼굴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운명인지 모른다. 두 개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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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2.01.1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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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린다. 어둠 속에서도 눈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쉼없이 내린다. 마당에도, 시든 나무 위에도, 내 마음 속에도 눈은 자꾸 쌓여간다. 함박눈이 분분히 날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온통 고요와 평화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 내리는 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저렇게 찬란하고 아름답고 순정하게 내리는 눈을 내버려 두고 어찌 혼자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눈을 바라보면서 시인 김수영은 "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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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12.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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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행복은 무엇에 달린 것일까. 행복을 논할 때 우리는 먼저 돈과 권력을 생각한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명예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행복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저토록 행복해 보이는데, 내 삶은 왜 이토록 불행한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한 삶이란 어떻게 가능한가? 행복한 삶에 대한 욕망은 늘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사업이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벌수록, 높은 지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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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12.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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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어떻게 누려질 수 있는 것일까. 현대적 삶에서 우리가 가장 힘든 일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같이 온갖 인간적·사회적 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 마음의 평안를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삶을 조금만 다르게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이에 관한 해법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삶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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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11.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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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동 유럽에 위치한 체코 프라하가 아닐까 싶다. 카를교, 프라하 구시가지, 프라하 성 등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필자도 이곳을 몇 차례나 방문한 적 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감회에 젖곤 했다. 특히 늦가을에 프라하의 고색창연한 구시가지 뒷골목을 걸을 때, 낙엽이 거리에서 어지럽게 날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존재의 한없는 쓸쓸함을 느끼곤 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거운 존재인가, 가벼운 존재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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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11.0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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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여름 강렬하던 햇볕과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던 풀잎과 나무들이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저마다 갈 길을 준비하고 있다.가을에 되돌아보는 일 년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올해만은 꼭 잘 살아봐야지 하고 굳게 다짐하며 시작했던 일 년의 계획이 이제 달랑 달력 두 장으로 남았다.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의 삶 속에서 지난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인생 열차는 어느덧 또 다른 정거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우리의 얼굴에는 중년과 노년의 삶의 주름이 또 하나 드리워지게 된다. 지난여름 찬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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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10.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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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30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모든 언어는 독특한 발음과 어법을 지니고 있다. 이 언어들은 당연히 저마다 다른 인사말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할 때, 한국어는 '안녕', 영어는 '헬로', 중국에서는 '니 하오' 라고 말한다. 인디언 언어에서는 인사말을 어떻게 할까. '미타쿠예 오야신'이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이 말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세상의 언어 중에서 인디언의 언어는 가장 시적(詩的)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문학적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다. 그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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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10.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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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폭력과 증오는 끝이 없다. 그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종족과 종족,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과 분쟁이 이어진다. 최근 아프카니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레반의 무자비한 폭력은 이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비단 이런 현상이 후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오늘날까지 흑백의 인종차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흑백논리는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 하는 편중된 사고방식을 뜻한다. 모든 것을 흑과 백,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의 양 극단으로 나누어 놓고, 이것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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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9.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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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현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아테네대학교 법대 재학 시절에 『뱀과 백합』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졸업 후에는 파리로 유학하여 베르그송의 가르침을 받고 니체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내 인생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것은 여행과 꿈들이었다"고 할 만큼 카잔자키스의 삶은 여행의 연속이었다. 그리스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를 여행했고 다수의 기행문을 출간했다. 1917년 여행 중에 만난 요르기오스 조르바스와 함께 갈탄광 개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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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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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식탁에서 결코 빠뜨려지지 않는 것이 고기이다. 고기를 포함한 음식에 대한 탐욕은 갈수록 심해져서 언론 매체에서도 이른바 먹방이 인기 프로그램의 하나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또한 왜 이렇게 많은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책에 의하면,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식생활에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파생되는 문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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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8.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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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생김새만큼 제각각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뚤어지고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인간의 심성이란 본래의 타고난 성품으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 그리고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백지상태라는 성무선악설 등이 그것이다. 성선설을 주장했던 맹자는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사람들이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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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8.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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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누군가의 죄나 잘못을 벌하거나 꾸짖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흔히 위인들은 "용서해라, 그래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용서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말과 달리 성자가 아니고서야 과연 나에게 해를 끼친 타인을 쉽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더군다나 그렇게 용서하며 행복을 찾는다는 더욱 힘든 일이다. 누구나 차마 용서하지 못할 원망과 미움의 기억들을 하나둘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그의 「용서」에서 "용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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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7.2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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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맑은 공기와 강, 그리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티베트의 고원에 위치한 라싸는 표고 3650m나 되어서 사람들은 공항의 트랩을 내리면서부터 숨이 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란 의미를 지닌 라싸는 지금은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구도(區都)이다. 티베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라싸도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커서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하루 사이에 사계절을 다 맛볼 수 있을 정도이다. '태양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라싸의 일조시간은 다른 지역보다 특히 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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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7.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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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인간관계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진다. 삶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도 모두 어찌 보면 그 만남을 얼마나 아름답게 승화시켰느냐 그렇지 못하였느냐의 차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사람들은 흔히 만남과 헤어짐은 인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연이 있다. 잘못된 배우자와의 인연,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는 자식과의 인연, 바람부는 거리에서 만나야 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 저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지 못해 우리는 오늘도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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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1.06.28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