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서귀포시는 이중섭이 1951년에 피난 와서 거주했던 집을 1997년에 복원 공개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이중섭 거주지 복원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가옥의 너비를 2m가량 더 늘여 예전에 없던 새로운 방을 하나 더 만들어놓고는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방이라고 허위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 본 연재 제27, 30, 31, 32, 37, 40회 참조)20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9.24 17:50
-
① 「물고기가 그려진 소」는 이중섭이 1951년 서귀포 피난시절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중섭이 1940년 일본유학시절에 그린 것이라고 했다. 황소가 뿔로 물고기를 떠받은 뒤 불알을 보여주며 '엿 먹어라!'고 욕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물고기는 제국주의자를 상징한다고 했다. (※ 본 연재 제3회 참조) ② 이중섭이 1940년 일본 자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9.18 18:40
-
「소와 아이」지게를 지겟다리로 받치듯이, 쓰러지려는 소를 아이가 등짐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소의 뒷발이 모두 땅에서 20~30㎝ 가량 들려있다. 뭐? 아이가 소를 받친다고? 아무리 작은 소라고 해도 300㎏은 넘을 텐데, 어떻게 아이가 소의 사타구니에 들어가서 소를 떠받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중섭 그림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제주신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9.10 19:08
-
「길 떠나는 가족」 원화는 지금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귀포로 향한 이중섭 일가의 이주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이중섭미술관 전시도록에 적혀있는데, 이는 잘못된 해설이다. 왜냐면 이 그림을 그리던 1954년 당시, 이중섭은 가족이 있는 일본에 가려고 했지 서귀포에 오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9.03 19:17
-
「흰 소」1953년 12월 8일, 마사꼬는 일본에서 자신의 '곤란한 입장'을 편지에 적어 통영에 있는 남편 이중섭에게 보냈다. 편지를 받은 이중섭은 마음이 무거워 곧 답장을 쓰지 못하다가, 해를 넘겨 다음달(1954년 1월) 7일에야 답장을 썼다. 자신이 일본으로 가는 데에 찬성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연기하면 결국은 서로 불행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8.27 19:24
-
중섭이 1953년 초가을,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 "우리 성가족(聖家族) 넷이서 단란하게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대지를 밟으면서 정확한 눈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응시합시다."이 편지의 구절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가족」이란 그림이다. 다시 말해서, 「가족」은 이중섭이 자신의 가족이 이런 성가족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8.20 19:23
-
'발가락 군'이중섭과 마사꼬가 사귀기 시작한 것은 1940년이었다. 둘은 동경 신주꾸 일대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하루는 마사꼬가 신발이 벗겨지면서 발가락을 다쳤는데, 이때 이중섭이 마사꼬의 발가락을 정성껏 간호해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듬해 이중섭이 관제우편엽서에 그려 애인 마사꼬에게 보낸 그림이 바로 이 '발가락 군'이다. 이중섭이 마사꼬의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8.13 19:05
-
일본 니혼미술학교 공예도안과를 졸업한 유강렬(劉康烈)은 1953년 당시 통영의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교육 책임자로 있었다. (이 양성소는 경상남도가 통영의 자개공예를 부흥시키기 위해 2년제 과정으로 설립한 것) 유강렬은 이중섭에게 이 양성소 공예품에 대한 품평도 부탁할 겸해서 통영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통영으로 이주해간 이중섭은 평온을 되찾아 후일 그의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8.06 20:07
-
미공개작 '전시준비위원회'와 '전시기획단'2005년 '이중섭 위작사건'은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가짜 이중섭 작품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2005년 4월 22일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이중섭 박수근 미공개작 전시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한국고서화협회 회장 김용수씨가 SBS에 접근하여 SBS와 전시계약 기본원칙에 대한 합의를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7.30 18:56
-
「부부」「부부」는 통영에서 그려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중섭이 통영에 가기 전, 부산에서 그린 「판잣집 화실」이란 그림에 이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나는 최근에 발견했다. 따라서 통영에서 그려졌다는 추정은 잘못된 것이다. 부산에서 그린 것, 또는 부산에서부터 이 주제를 가지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 가운데 그림 「판잣집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7.23 18:33
-
"여러 가지 추억을 소재로 한 소품들"|나의 귀여운 가장 멋진 남덕군, 6월 25, 28일자 편지 잘 받았소. 아이들을 데리고 돈을 번다는 것은 힘이 들 것이오. 당신을 도와주는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소. 부산도 통영과 마찬가지로 장마철이라 매일 비가 오고 있소. 편지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이 생겨서 걱정이라고 했는데 안심하시오.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7.16 18:52
-
가족이 일본으로 가다 일본 정부는 패전 후 한국에서 곧바로 귀국하지 못한 일본인들을 1952년에도 귀국 조치했다. 이중섭은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일본으로 보내고 자신은 뒤에 따라가기로 했다. 마사꼬는 두 아들을 데리고 초량동에 있는 일본인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제3차 송환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중섭이 1953년 5월 중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7.09 18:46
-
미학적 태도"내 친구 중섭이 있소. 멋진 사람인데 신문 삽화라도 맡겨주구려. 현재 부두에서 노동을 하는 모양인데……" 경향신문사 문화부장 김광주를 찾아간 구상은 이중섭의 일거리를 청탁했다.김광주는 필화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대한민국 공보처장 이철원을 모델로 한 소설 「나는 너를 싫어한다」를 신문에 연재했다가 이철원에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7.02 19:38
-
제주도 민가는 뼈댓집이다제주도 민가는 우리나라의 여러 민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뼈대가 있는 집이다. 육지의 집들은 기둥과 보를 간단하게 걸어가면서 방들을 덧붙여가는 결합방식인데, 제주도 집들은 뼈대를 먼저 만들어놓고 나서 각 방을 나누어가는 분할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제주도 집을 밖으로 증축한다는 것은 구조역학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6.18 20:02
-
통치자의 허위와 위선1998년도 서울대학교 입학 논술고사 문제는 제시된 글을 읽고 수험생 자신의 생각을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제시문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었는데 이는 '통치자의 위선'과 '피통치자의 우둔함'을 대비시켜놓은 정치 우화였다. 많은 수험생들은 '통치자의 위선'을 지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6.11 20:11
-
이중섭 그림 「서귀포의 환상」에는 열매를 수확하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열매를 따려고 나무에 올라간 아이, 새를 타고 공중에 올라간 아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가지를 꺾어 내리는 아이, 새가 떨어뜨려준 열매를 광주리에 주워 담는 아이, 들것에 과일을 가득 담아 나르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낮잠을 자는지 일은 하지 않고 땅바닥에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6.04 20:45
-
이중섭 그림에 대한 안목도대체 이중섭 그림 어디가 훌륭해서 다들 그렇게 '이중섭 이중섭' 하는 걸까. 「 이중섭 그림을 보면 데생 틀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비례는 물론이고 해부학적으로도 틀린 곳이 수두룩하다.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은 국민화가라면 다양한 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할 텐데, 그의 선은 그저 힘차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게 없다. 색깔도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5.30 10:19
-
이중섭에 관한 기본 틀1968년, 당시 용산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학교 앞 책방에 들러 따끈따끈한 신간들을 훑어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책 한권 사지 않고 매일 공짜로만 보니 주인 보기가 미안하지 않은가. 그래서 한 권 산 것이 「성 고은 에세이집」이었다. 책 제목이 그렇게 되어있어서 나는 '성' 씨 성(姓)을 가진 고은이란 사람이 쓴 책인 줄 알았다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5.14 17:40
-
팔자 좋은 사람 서귀포시가 '이중섭 문화의 거리 지정'을 비롯한 이중섭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일찍이 서귀포에서 오성찬이 이중섭을 모델로 한 중편소설 「어두운 시대의 초상화」를 썼기 때문이리라. 오성찬은 자신이 이중섭에 대해 맨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신이 중등학교 미술과 준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할 즈음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시인 구상(具常)이 서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5.07 18:46
-
이중섭의 예술혼이중섭을 모델로 한 오성찬의 중편소설 「어두운 시대의 초상화」가 발표된 것은 1987년 10월이었다. 그보다 1년 전인 1986년, 오성찬이 이중섭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이중섭거주지(서귀동 512번지)를 찾아갔을 때 집 주인 김순복 할머니가 오성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 사람은 어쩐 일인지 소 그림을 잘 그려
지난 연재
제민일보
2008.04.30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