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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는 운동 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것이 걷기운동이라고 한다. 걷는 것은 우리의 몸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체력은 물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칸트, 룻소, 베토벤 같은 위대한 사람이 모두 걷기와 산책을 통하여 사색과 창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유명하다. 나의 하루는 걷기와 함께 시작한다. 새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지고, 예쁜 들꽃들이 생기있게 봉오리를 피워 올리고, 나무들이 대화하는 소리와 풀 내음의 향기가 가득한 숲길과 들판을 걸을 때 나는 가장 큰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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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8.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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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개미는 우리들의 적대적 대상이었다.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개미집을 찾아 이유 없이 개미들을 '집단학살'하곤 했다. 밟아서 죽이고, 돌로 두들겨 죽이고, 물을 부어 개미사회에 '노아의 방주'를 일으켰다. 개미들을 왜 그렇게 못 살게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개미의 세계를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들을 그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다.우리는 흔히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개미'로 비유한다. 더욱이 자신의 온갖 욕망을 억누르고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을 '일개미'라고 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회 조직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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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7.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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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앙드레 지드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지상의 행복을 쫓기보다 천상의 성스러움에 닿기를 원하는 인물 알리사와 그녀를 흠모하는 제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촌 남매 간인 알리사와 제롬은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다. 어린 시절, 제롬의 외숙모인 알리사의 어머니의 불륜 사건으로 비통함에 젖어 있는 알리사를 곁에서 위로하며, 제롬은 세상의 모든 공포와 악의 삶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성장한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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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7.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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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텅 비어 있다. 빈 바다에는 점점이 섬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텅빈 공(空)에 대해 생각하고 충만한 영원의 섬을 꿈꾼다. 제주 섬에서 또 다른 섬, 마라도·비양도·가파도·우도·이어도를 바라본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면서 꿈에도 그리는 구원의 섬이기도 했다. 이어도는 이 지상에서의 모든 고통도, 인생의 덧없음도, 가신님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사랑과 행복과 축복이 넘쳐나는 피안(彼岸)의 섬이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이어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왜 사람들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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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6.2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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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온갖 꽃으로 찬란하던 산과 들에도 신록의 나무가 가득하다. 푸른 나무들과 인생살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산책길은 자꾸 수다스러워진다. 지구에서 잠시 살다 떠나는 유한한 생명이라는 점에서 나무와 인간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저 나무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보일까. 숲에서 함께 지내는 나뭇잎들이나 새들보다는 훨씬 재미없고 반갑지 못한 이웃이 아닐까. 남루하고 지친 내 모습에 비해 나무는 언제나 푸르고 당당하다. 봄날 벚꽃 향연을 보러 가던 시절의 벚나무, 옛 노래 가사에 등장해서 이별하는 정인(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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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6.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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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H. D. Thoreau)는 「월든:숲속의 생활」에서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사려 깊은 삶을 살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과연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을 때가 되어서 자신이 전정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곡하는 꼴이 되고 싶지 않았고,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한다.소로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세속적인 명예나 물질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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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5.2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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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럽고 힘든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문학과 음악 같은 예술세계를 동경한다. 예술은 인간을 진실과 아름다움의 세계로 안내하고, 사람들에게 세상과 삶을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흔히 문학을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보루 위에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해 비판하고, 과학 기술적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점을 폭로해서 올바른 삶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실존하는 인간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은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두고 고민했지만, 사르트르만큼 일생 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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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5.1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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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서 오랫동안 집안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른 듯하다. 아직 지구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기저기에서 철없는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유혹하는지라 사람들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거리로 뛰쳐나온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얻은 것세상은 아우성치지만 아랑곳없이 봄은 찬란하다. 꽃은 제가 피어날 시기를 어찌 저리 기막히게 아는지 철쭉이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이팝나무가 눈꽃처럼 봄바람에 흩날린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감사해야 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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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4.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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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문학에서 정치란 음악회 중에 쏘는 총소리와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음악회에서 아름다운 연주가 흘러나오는데 총소리라는 불협화음이 들린다면 어떻게 될까.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은 물론 음악회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 문학에서의 정치, 정치에서의 문학, 이 양자는 어느 모로 보더라도 쉽게 결합할 수 없는 상반된 영역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둘 다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정치가의 언어문학은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세상을 표현하는 예술 장르이고, 정치도 언어를 통하여 대중의 감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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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4.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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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과 춘분이 지나고 봄의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봄비가 내려 얼어있던 얼음이 녹아내리고, 새 보금자리에서 겨울을 지낸 철새들도 먼 땅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잠든 나무를 흔들고 묵은 것을 날리는 꽃샘바람이 불면서 만물이 생동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렇지만 올해는 어쩐 일이지 모든 것이 우울한 봄이다.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만발하여 봄 처녀를 유혹하고, 여름의 짙은 초록을 준비하기 위한 연두가 한창이고, 강남 갔던 제비들도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시간이지만 모든 것이 잔뜩 움츠려 침울하다. 그나마 산책길의 오름 언덕배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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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3.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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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 19'라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려움과 절망감이 더욱 심해져 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유령이 우리 사이를 활보하고 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처방법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기지난 세기 초반에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망령이 나돌았듯이, 지금 '코로나 19'라는 질병은 분명히 하나의 새로운 유령이다. 그것은 기술적 물질적 삶의 가치에 매달려 오직 생산과 소비에 골몰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이다. 과학과 자본의 일부로 전락하거나 수동화되어 생기를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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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3.0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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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는 '멋진 신세계'인가 아니면 언제 어떤 형태로 소멸할지 모르는 위험한 행성에 불과한가. 그렇다면 지구가 안고 있는 치명적 위험은 무엇일까. 최근 인류의 미래를 연구하는 단체인 '퓨처스'에서 세계의 많은 과학자를 대상으로 '2020 위험 보고서'라는 설문 조사를 하여 그 결과가 나왔다. 이들에 의하면 기후변화 대응 실패, 기상이변, 생물 다양성 감소, 식량 위기, 그리고 물 부족이 미래의 인류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세계 5대 위험'으로 꼽혔다. 인류 생존의 위험과학자들은 주로 지구상에 나타나는 물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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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2.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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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재앙이 다가오고 있으며, 머지않아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다.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와 전쟁과 질병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매우 극적인 일화가 나온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원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린다. 갑자기 언어가 달라진 인간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된다.'신종 코로나'의 저주'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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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2.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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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것은 현대인의 비극적 초상이다. 현대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희망에 부푼 채, 출구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며 탈출의 기다림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기다림의 희망을 잃은 사람의 삶은 사막같이 삭막한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 인간의 삶을 끝없는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기다림 속에서 인간존재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작품에서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시골길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Godot)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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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1.2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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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이 있다. 닭이 알을 깔 때에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줄과 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놓이게 오면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계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아갈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병아리처럼 울기만 한다. 알에서 깨어 나오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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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20.01.1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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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우리 곁에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다. 동업자의 주검 앞에 저승길 노잣돈으로 올려진 동전까지도 챙기는 희대의 구두쇠이며, 모두가 행복에 잠겨있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 스크루지이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1843년 「크리스마스 캐럴」을 발표한 이후로 소설의 주인공인 스크루지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등을 통해 거듭 태어났다. 문학 속에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다룬 것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처음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철학'이라고 불리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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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19.12.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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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제각각 다른 생김새로 살아간다. 또한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박하고 삭막한 사람이 있다. 이해심 많고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사에 부정적이고 왜곡된 마음을 가진 사람도 많다. 사람의 마음은 천양 각색이고 그 마음속은 정작 자기 자신도 알기가 힘들다.아침저녁으로 바뀌며 변덕을 부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긍정적이며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바르고 밝은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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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19.12.0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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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공황 상태라 할 정도의 정신적 혼돈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간신히 지탱해주던 '정의' '도덕' '윤리' 같은 중요한 정신적 덕목들이 극도의 아노미 현상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의 가슴 속에 진정한 윤리와 도덕의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가.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사고와 행위가 타자의 힘, 이를테면 정치적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의적으로 쉽게 변질되거나 무화될 수 있는 것인가.우리는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하여 대체적인 긍정과 공감의 믿음을 가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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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19.11.2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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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도 지나고 겨울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세월의 흐름은 참으로 무상하다. 씨를 뿌린지 엊그제 같은데 들판에서는 일 년 동안의 수확이 한창이다. 한해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은 그리 풍요롭지 못한 듯하다. 영혼은 정신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생명의 원리로 알려져 있다. 영혼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인간 감정이나 지성과 같은 의식작용을 지배한다. 이를테면 영혼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빛이나 양심의 본질을 가리키는 은유적 상징의 언어이다. 영혼의 힘, 즉 내면의 정신적 에너지를 추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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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2019.11.11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