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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살아남았으니 할 말이 있다. "눈물흘릴 시간이랑 말앙. 우리 북촌 선량한 국민들 다 죽어부난. 죄어신 사람 나오렌 허난 줄줄줄 나오난 다 죽어서." 일제강점기, 이어진 4·3 북촌학살의 현장 난시빌레에서 다 죽은 오빠를 언니와 들쳐 업고 집까지 달려갔던 것은 초인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대학살의 현장 북촌국민학교 마당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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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1.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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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그러더니. 되긴 된다. 팔딱팔딱 남들 다하는 줄넘기도 못하던 아이, 접었다 폈다 한복자투리로 늘 옷이랑 뭔가 만들던 손끝 야물던 아이. 예쁜 것에 혹하던 아이. 의·식·주 철저하게 자기식대로 살다보니 남들이 보면 유별난 사회부적응증! 그 아이가 지구의 환경을 이야기한다. 보자기 하나로. 웬걸, 그의 살림철학이 이 시대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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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1.01.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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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기중! 분쟁지역의 바람아, 잠시만 기다려라. 그의 시선은 지금 오지 중 가장 위험하다는 곳, 콜롬비아 아마존의 열대를 향한다. 카메라, 수첩, 배낭을 꾸려놓고. 열정 그 자체. 일년의 65일은 오지 탐험의 길에 시간을 바치는 사람. 당신인들 누군들 꾸지 않으랴. 여행! 가슴뛰는 이름. 시간과 돈이 받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 역시 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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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12.3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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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해녀 양씨' 보셨죠?" 그에게 해녀는 제주의 어머니다. 검정과 자색 고무옷. 다섯 명의 해녀들이 활기차게 바닷가로 내려오고 있었다. 얼마후 바다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로 가득찼다. 4~5시간의 장대한 드라마라니! 경외감에 가슴이 설렁였다. 그가 제주에 부임한 지 한달 후의 어느 일요일, 용두암 바닷가에서였다. 대자연과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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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12.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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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 사라지고/사막은 어둠에 덮이었다/사방 천지에 불꽃 하나 없이/센 바람이 휭-하고 달려 나가면/낙타의 방울소리가/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장윤식 '사막의 밤하늘')" 가도 가도 끝없는 옛 왕국 누란지구. 서역남도는 그 옛날, 현장삼장 법사와 마르코 폴로가 통과한 길. 그건 경이였다. 실크로드에서 광개토대왕의 말발굽도 들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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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11.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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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드릴까요?" 만나자마자 그가 그런다. 직업이라니? 지난 9월, 경희대에선 대학생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1000개의 직업을 제안한 것. 반응은 폭풍이었다. 이른바 상상력과 새로운 발상의 직업들이다. 대한민국에서 그의 이름은 시대의 아이콘이다. 검사,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소셜디자이너.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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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11.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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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히다 했다. 21세기에도 제주의 신화를 살아있는 종교로 부른다는 게. "한 민속학도로서 먼저 제주도를 필드로 삼았던 나는 제주도의 자연을 깊이 사랑하고, 제주도를 내 학문의 고향, 마음의 고향, 제2의 고향으로서 그 민속문화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 현지조사가 어렵던 1950년대, 제주도의 그것을 누가 보석이라 했던가. 제주의 무속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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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10.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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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4·3 60주년 동경에서 열렸던 4·3 기념 행사의 김석범 선생과의 대담에서였다. 유창했다.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그녀를 두고 한 제주대 일본어교수가 그랬다. 그녀만큼 우리말을 잘하는 재일동포 2세를 본 적이 없다고. 80년대 마당극운동을 일본에서 전개했던 재일 문화운동가이자 문화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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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10.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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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녀에게 각(刻)은 밥이다. 각은 생의 결이다. 빨리 새벽이 와서 각을 했으면 했다는 그녀. 어느해 겨울 새벽, 타오르는 난롯가에서 그녀는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아무런 것에도 귀를 열지 않는 사람처럼. 이랑을 파는 농부의 손처럼. 오로지 나무와 서각칼, 망치를 들고 나무에 새김질만 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사십대 초반에서 육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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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9.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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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런 내력이라니. 소년의 몸 속에 피아노의 신이 와락 들어와 버렸다니. 서양 악기를 우리 악기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연주엔 우리 음악의 원류가, 바람과 물의 만남같은 풍류가, 백제여인의 사랑같은 마음의 떨림판이 있다. "진정으로 조상들의 풍류가 다시 한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우린 발효민족, 풍류민족이예요. 서양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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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9.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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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굿을 한다." 얼마전, 한 재일3세 작가가 제주에 왔다. 선인장 가시마저 졸고 있던 폭염이었고, 가벼운 차림새였다. 그가 처음 제주을 찾은 것은 지난 3월, 그때 만났었다. 이 말은 그때 그가 쓴 제주노트 한구절이다. 다시 만난 그는 몇달새 제주섬에 더 깊이 들어가 있었다. 제주살이 15일. 그는 4·3의 현장,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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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9.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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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람은 안보인다. 흐르는 건 안개와 소나무뿐. 헌데 인간처럼 서로가 의지한 듯한 형상, 저 실루엣에선 기척이 들린다. 언뜻 소나무냐, 인간이냐 눈과 귀를 연다. 아무런 수식이 필요없다. 구불구불한 몸체에 거친 피부, 숨죽인 숲은 수직의 장엄한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과연 셔터 소리가 났을까? 없다. 비었다. 수묵담채화 같은 그의 소나무에선 얼핏 겸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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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8.1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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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우보천리. 소의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안그런가. 이 삶을 두고 한마디로 갈라진 나라, 굴곡진 역사의 축소판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독립운동 시기 일본에 쫓겨 함경도에서 북간도로 간 유랑민의 자손. 중동 카이로, 북한, 한국으로 정착해야 했던 그의 삶은 유장한 대하이다. 이십대, 이미 그의 눈은 멀리 문명교류의 길에 꽂혀있었다.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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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8.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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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프랑스 노학자는 시종 겸손했다. 한국문화?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투다. 대신 말한다. 정확한 우리말로.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우리가 태어났는데, 돌문화공원의 훌륭한 예술품인 돌의 기운에 기가 막혔다"고. 1973년 젊은 그는 제주칠머리당굿을 보러 제주에 왔었다. 동영상으로 그 독특한 굿을 찍었다. 그는 제주굿에 1948년 비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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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7.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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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어조는 느렷으나 질박했다. '처음처럼', 겸손했다. 흡사 그가 걸어간 '서편제'의 그 토속적인 가락 혹은 그의 영화의 미덕인 여백의 미학처럼. 영화감독 임권택. 칸느 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명장의 반열에 올랐던 한국영화계의 거장. 100편이 넘는 노작(勞作)을 일군 감독. 격정의 시대를 거친 그에게 영화는 경작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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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7.0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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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니까 섬으로 간다. 그 외로움으로 시를 쓰고, 시를 읊는다 했다. 천 개의 섬에 닿았다. 파도소리만 듣고도 어드메 섬인지 느낄줄 안다. '섬의 시인', 숙명인가. 설레던 소년의 바다에서 이제 노년의 바다. 허나 섬에 대한 연정, 식지 않았다. 시인에게 섬은 시다. 제주 성산포를 향한 그의 절창 '그리운 바다 성산포'. 많은 사람들이 성산포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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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6.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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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다. 구석구석 고향길을 밟았다. 물집이 터지도록. 걸으며 눈으로, 가슴으로 느꼈다. 어머니, 고향의 대지를. 시월의 바닷바람을. 햇볕, 모퉁이에 핀 풀꽃들…. 감동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어려선 몰랐던 제주의 길. 7박8일, 204㎞. 고교 졸업 후 고향 품을 떠났던 앳된 소녀는 이미 이름만으로도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공인하는 국민배우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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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6.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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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대체 그 많던 상어들은.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 거기 살던 그것들. 그래도, 그는 기다린다. 왤까? 주낙을 당기면 하얀 물체가 흔들흔들 올라올 때. 수협에 팔아서 전표를 받아올 때. 또 있다. 모슬포 어민들의 수입원인 방어. 그것들을 먹어치우는 상어를 잡는 일은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나도 못잡을땐? 허탈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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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4.2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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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무대에 선 '아리랑', 객석의 눈물 뽑아내 1981년 2월 7일. 교토의 연주회장에 '아리랑'이 울려퍼지자 객석은 전부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가 지휘를 맡은 '아리랑의 밤'이었다. 분단조국이지만 조선의 민요에 갈등과 대립은 없었다. 그가 대표인 오사카 민족음악연구회가 주최한 '아리랑'은 그렇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다음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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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4.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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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에게 산은 삶이다. 그래도 그에게 산은 밥이다. 산소다. 아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연인이다. 모든 삶에는 예고가 없다. 그 순간도 그랬다. 푸른 청춘 위로 덮친 벼락같은 눈사태. 1979년 5월29일은 영광과 절망이 교차하던 날. 한국인 최초로 북미 최고봉 맥킨리에 올랐으나 그의 생을 극한의 눈보라가 강타한 그날이다. 하산길, '에베레스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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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2010.03.18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