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이다. 사방에서 온갖 향기가 발걸음을 부른다. 벚꽃이 만개한 덕분에 밤길마저 환하다. 가로등이 따로 없어도 될 정도다. 이런 봄날을 만끽 할 수 없다면 참으로 불행하다 싶다. 책상머리에서 온종일 서류더미와 싸워야 하는 처지는 이런 날일 수록 덧없이 느껴질 것이다. 겨우 시간을 내어 걸을 수 있는 여유는 점심시간뿐인 사람도 많다. 그것마저 여유롭다 할 처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한 바퀴를 느리게 걷는다. 안보이던 건물이 어느새 불쑥 세워져 있기도 하다. 자고일어나면 집 한 채가 뚝딱 지어지던 한 철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9.04.01 17:27
-
봄이다. 한밤에도 아파트 앞 목련나뭇가지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간밤에 누가 밤새도록 목련나무 아래서 성토를 해댔는지 묽은 토사물이 흥건하다. 아파트 경비원이 물 양동이를 들고 와 씻어대면서 "요즘 젊은 것들이"라면서 구시렁댄다. 젊은이의 짓인지 노인의 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지 '젊은 것들이란'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한 자'의 대표명사가 돼버렸다. 젊은이들의 수난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목련꽃 아래서 사진 몇 장 찍노라니 지나가던 지인이 '저 꽃 덩어리 하나면 하루 마실 차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9.03.18 19:06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들이 많이 열린 모양이다. 그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당시 항일운동의 주역이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는 소식이다. 더불어 유관순 열사는 독립유공자 1등급 포상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을 받게 되었다. 방송사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다루었다.수많은 애국투사들 가운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발굴되고 이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9.03.04 15:23
-
'좋은 날씨'도 변수…특별자치도·국제자유도시에 '농업'없어생산·설계 위주 농정 한계, 경쟁력 약화·대응 부족 등 자초소비자 중심 사고, 일자리·소득선순환 등 영향력 정책 반영"'좋은 날씨'까지 생산성 불안 같은 변수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손에 쥘 수 있는 것에 변화가 없다. 물류비 부담만이라도 해소하면 어느 정도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그 것마저도 여의치 않다보니 이젠 땅을 내놔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정선태 전 제주도농업인단체협의회장이 무겁게
진행 연재
고 미 기자
2019.03.03 15:08
-
겨울이 가는가 싶다가도 아직은 아니지 싶은 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싸하다. 비염으로 보름여 고생했더니 코끝에 맺히는 싸한 공기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뻥 뚫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코가 막히니 귀도 멍하고 눈도 침침하여 세상이 미세먼지로 꽉 찬 듯하였다. 아무리 코를 풀어도 콧물은 어디서 솟아나는지. 비염의 혹독한 위력을 처음 경험하였다. 평소에 맹맹하고 간지러운 느낌을 대범하게 무시했더니 생긴 결과이다. 어떤 것이든 신호가 먼저 온다는 것을 대놓고 무시했다. 또한 감각의 열림이란 게 얼마나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열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9.02.25 15:07
-
외부 환경 민감…2000년 이후 수차례 위기에도 뒷북대응관광국 승격 외형적 전문성 확보 그쳐 역할분담 등 미흡"관광수익 선순환 향토자본·경쟁력 강화 방안 모색 필요""'관광'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유기체적 성격을 파악하고 경쟁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는데 행정도, 업계도 활황세에 안주했던 것이 위기로 이어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김영진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장의 지적은 아프지만 반박하기 어렵다.제주 관광 성장세가 주춤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만 2003년
진행 연재
고 미 기자
2019.02.24 14:01
-
지난 한 해 제주도는 많은 사회적 문제와 갈등으로 큰 홍역을 겪었다. 게다가 제주경제는 최악으로 서민경제가 어렵다. 새해를 맞아 본보는 제주경제 침체의 원인과 해법을 현장 중심으로 전달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 번째로 박영조 전 JCC 회장의 폭넓은 경제시각과 대안을 듣는다.원 도정의 반기업적 정치행정 지속되며 투자자 제주 기피 저성장 초래자영업자 폐업 늘며 기반 무너져…투자유치·산업혁신이 답제주는 투자유치·노사문제 책임진 광주형 일자리 본받아야실효성 있는 투자유치 없이 민간 일자리 2만개 창출 못해 기업 망하게 하는
진행 연재
박훈석·김지석 기자
2019.02.17 16:31
-
박영조 전 JCC회장 본보 인터뷰서 밝혀무법적 자본검증으로 투자기업들 내쫓아인천시 6조원 복합테마파크 유치와 대조 박영조 전 JCC회장은 제주경제가 현재 겪는 저성장의 근본 원인으로 제주도정의 반기업적 행정을 꼽았다.박 전 회장은 본보가 새해를 맞아 제주경제 침체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는 인터뷰에서 "한국은행 등 전문기관에서 체질개선을 통해 장기 성장동력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제주도정이 글로벌 투자자의 목을 조르는 반기업적 정치행정으로 투자자들이 제주를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이어 "제주도는 강점인 관광산업은
진행 연재
박훈석 기자
2019.02.17 15:49
-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1963)을 최근에 다시 봤다. 영화감독 '귀도'의 좌충우돌 로맨스 서사라고만 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영화. 어른이기도 하고 어린아이이기도 한 '귀도'의 웃픈(우습기도하고 슬프기도한) 삶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오면서도 내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나오는 맥스의 모습도 내게 있지 않을까. 가끔씩 과도하게 돌출하는 나의 웃음과 행동의 저변에는 어린 시절 다 쏟아내지 못한 충동과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9.02.11 16:28
-
이탈리아의 화가(1490?~1576) 티치아노의 회화 '인간의 세 시기'는 '세월의 흘러감'에 대한 사유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유아기, 청년기, 노년기의 세 시기를 위치와 크기, 구도를 달리 함으로써 인간 발달단계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오른쪽 맨 앞에 위치한 청년기의 모습에서 가장 건강한 육체와 서로에게 향한 강렬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보다 조금 거리를 두고 왼쪽에 위치한 그림에서는 몽실몽실한 유아들의 불균형적인 몸과 한사코 누군가에 의지하려고만 하는 강한 의지에서 귀여움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9.01.28 18:29
-
도, 16개 부문 45개 세부 추진과제 수립…예방·대비·대응·복구 단계별 제시'지진·해일방재 선도도시' 비전…도민안전체험관 완공시 시너지 효과 기대 제주도는 활성단층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진 발생빈도가 높은 일본과 지정학적으로 가깝게 위치하고, 최근 유감지진의 발생건수가 증가하여 도민의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제주는 지진 발생 시 취약한 입지여건(섬, 관광지 등), 기후환경(태풍, 강풍, 해수면상승 등), 주거지여건(해안가 저지대 밀집 등) 등에
진행 연재
강승남 기자
2018.12.25 16:09
-
교토대 방재연구소 1951년 설립…지진·화산 등 연구 활발해외주요 대학교·연구기관·국제기구과 협약 체결 성과 공유 방재선진국을 가보면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재난관리 전문가가 전공을 살려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아직까지 대부분 토목·건설 등을 전공한 이들과 관련학과 교수들이 재난안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에야 국립방재연구원이 출범했고, 국립지진방재연구원 설립은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된 수준이다. 일본은 주요 대학마다 방재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미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재난
진행 연재
강승남 기자
2018.12.09 12:55
-
바닷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는다. 썰물과 밀물의 시간차 사이에 숭어가 딸국질을 한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더니 마을 앞 포구에 망둥이 떼가 하늘빛에 물들어 나른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꼬리의 움직임이 사뭇 부드럽다. 맨발로 물에 들어서면 물고기들이 제 친구인줄 알고 달려들 듯 하다. 마치 멸치들이 원담 안 그물에 걸리듯이 말이다. 어릴 적 새벽녘이면 "멜 들어수다."하고 외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한 번도 멜이 든 바다로 나가본 적은 없지만 "메에에엘" 하고 길게 내뿜는 목소리의 힘만으로도 어느 정도 잡혔는지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8.11.26 18:02
-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나눔 활동에 할애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동참했으면 합니다"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중 진행하고 있는 착한가게 캠페인에 지난 2009년 가입해 현재까지 꾸준히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는 황병학 한강식당 대표(61)의 봉사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한결같다. 황 대표는 누구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다.황 대표는 "제주에 오기 전 서울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했다"며 "당시 생활이 빡빡해 여유 없이 일만 해서 버거웠다"고 토로했다.이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당시 생활
진행 연재
강지환 기자
2018.11.19 22:17
-
고베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 건립…자연재해 줄이기 해법 모색교토 시민방재센터 등 '체험·교육' 위주 소규모 시설도 다수 운영제주, 200억 투자 도민안전체험관 건립…외형보다 내실 우선돼야일본은 기록과 기억, 체험을 통해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비하고 있다. 지진 등 자연재난을 예측하거나 막을 수는 없지만 기억과 기록, 체험과 교육을 통해 감재, 즉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많은 방재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 기념시설 탈피 방재 컨트
진행 연재
강승남 기자
2018.11.18 16:08
-
길을 걷다보면 유독 빈집들에 눈이 머물게 된다. 저 집엔 누가 살았을까.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저 집에 살게 될까 등.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더니 자신은 집값이 얼마일까가 더 궁금하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어쩌면 그게 더 솔직한 말일 수 있겠다. 오랜만에 나의 청소년기를 보낸 신촌길을 걸었다.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걸었다. 마을은 조용한데 손님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집 안에 든 사람들이 가끔 내다보기도 했다. 뭘 하러 돌아다니냐는 물음이 있어 마을길은 걷고 있다고 하니 의아한 표정이다. &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8.11.12 17:31
-
1995년 1월 발생 희생자 6437명…재산피해 1400억 달러진도계급 자체 개발…지진 속보 "가장 빠르고 정확" 평가"정부구호 마냥 기다릴 수 없어"…자역주민 네트워크 강화1995년 1월 17일 발생한 고베대지진(한신이와지 대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지진공법'으로 모든 건물과 다리, 항만 등 사회 인프라 시설을 만들고 '지진계' 등 최첨단 장비로 지진발생에 대비했기 때문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인명피해를 적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6437명
진행 연재
강승남 기자
2018.11.04 15:46
-
진부함은 피로감을 준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진부함은 악이다'는 말까지 하였다. 예술이나 철학에 있어서 진부함은 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의 존재 이유는 개념의 전복에 있고, 예술은 낯설게 하기에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처럼 진부하게 들리는 말도 없다. 하지만 그처럼 진실일 때도 없다. 누군가 들고 온 작은 선물 꾸러미, 그 속에는 바나나 한 개와 사탕 몇 알이 들어 있었다. 받는 순간, "아, 행복해"하고 탄성을 질렀다. 기대했던 것보다 나의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8.10.29 18:22
-
제주지역 발생 빈도 지속적으로 증가…고령사회 진입 등 위험 요소 존재지진시 공항만 폐쇄·불안감 고조 등으로 관광산업 침체 등 2차 피해 우려일본 등 주변지역서에서 쓰나미 도달 가능성 상존…"경각심 갖고 대비해야" 최근 이른바' 불의 고리'로 일컫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미국 알래스카 등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대규모 지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례없던 강진이 지속적으로 발생
진행 연재
강승남 기자
2018.10.21 16:42
-
제주의 산과 들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는 풍경 가운데 하나는 무덤이다. 어쩌다 벌초가 되지 않은 무덤을 만나면 내가 그 안에 있는 자의 자손인 것 마냥 미안하고 부끄럽다. 무덤을 둘러 싼 산담을 보면 후손들의 흥망성쇠를 보는 듯 씁쓸하다. 누군가 내 아버지의 무덤을 지날 때고 이런 생각을 하겠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봉토 하나로 겨우 버티고 있는 내 아버지의 집. 어머니는 봉분 위의 잔디가 다 벗겨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태풍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엔 한숨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산 사람들의 자리도걱정일 텐데 죽은 사람의
진행 연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18.10.15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