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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65주기 4·3완전 해결을 위해 2. 4·3평화재단제주4·3평화재단이 출범 5년여를 맞고 있으나 제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의 지원 부족 등으로 인한 인력, 조직, 예산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완전 해결을 위해서는 4·3완전해결에
4.3
박미라 기자
2013.03.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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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분산된 4·3사료의 정리 작업과 제주4·3의 세계사적 의미 정리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제주4·3평화재단의 4·3정책세미나가 22일 도의회에서 열린 가운데 안종철 전 5·1
4.3
박미라 기자
2013.03.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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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정부 7대건의안에 포함…10여년간 '제자리'특별법 개정서 누락…정부 유사사건 형평성 이유 반대대통령 대선공약 기대감 고조…위령제 참석 도민 희망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사업은 1999년 12월 4·3특별법 제정, 2003년에는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확정, 같은
4.3
박미라 기자
2013.03.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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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부터 법원에 제기된 제주4·3관련 8건의 소송 가운데 아직까지 표류중인 민사소송 1건이 올해 처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법원과 제주지법 등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법원에 제기된 제주4·3 관련 소송 8건 가운데 보수단체가 제기한 사건은 7건이며, 나머지 1건은 4·3 희생자 유족 등
4.3
김경필 기자
2013.03.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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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시지부회는 21일 제주시 이도2동 아람가든 회의실에서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3년도 정기총회를 갖고, 제주시지부회장에 한하용씨를 선출하는 등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했다. 다음은 임원진 명단. △회장 한하용 △부회장 김광우 문정수 현영화 △감사 오영규 홍철희 △사무국장 임계령.
4.3
제민일보
2013.02.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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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화 이후 4·3위원회 설립까지의 13년간의 진실규명 운동사와 2000년 8월 4·3위원회 설립 이후 10여년간의 활동사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적인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의 사례이다"2008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세계적으로 확산된 과거사 위원회 전체의 흐름과
4.3
양조훈
2013.02.0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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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4·3영령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1988년 4·3취재반장을 맡아 며칠 동안 뒤척이던 어느날 가위눌리는 일이 있었던 일을 회고한 이야기였다. 급기야는 누군가 침대를 흔들어댔고, 나는 침대에서 떨어졌다. 꿈이었는데, 실제로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4.3
양조훈
2013.01.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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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소설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 일어난 일들이다. 2007년 3월 중순께 필자는 한 고위 공직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청와대 소속 위원회 국장으로 신분을 밝히고 4·3과 관련해서 상의할 일이 있으니 만날 수 없겠느냐는 뜻을 전해왔다.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2급 상당의 공무원(이사관)이었다. 그 자리에서
4.3
양조훈
2013.01.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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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제주4·3평화재단 상임이사 부임 4개월여만인 2009년 7월초 뜻밖에도 환경부지사 내정자로 '소환' 받게 됐다고 표현한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나에게 부지사를 맡아달라고 한 김태환 도지사는 당시 강정 해군기지문제로 주민소환 투표란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다. 이런 주민소환 정국이 결국 나까지 '소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
4.3
양조훈
2013.01.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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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10일 제주4·3평화재단이 출범했다. 4·3중앙위원이자 역사학자인 서중석 교수(성균관대)는 2007년에 열린 토론회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4·3 과거사 청산보다 앞으로 있을 4·3평화재단의 활동이 여러가지 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렇게 4·3문
4.3
양조훈
2013.01.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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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그림 가려지자 "표현자유 침해" 논란재향군인회 임원단 방문해 전시물 논쟁도2008년 3월28일 보수단체들의 반대 속에 제주4·3평화기념관이 개관됐다. 당초 전시연출자문단에서는 개관에 맞춰 외신기자를 초청한 대대적인 홍보전과 기념관 오픈 기념 국제심포지엄까지 구상했다. 그러나 개관식 계획이 뒤죽박죽되면서 이런 계획은 물거품
4.3
양조훈
2013.01.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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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5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4·3평화기념관 개관 연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과 박성일 4·3지원단장을 호출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쉽게 짐작이 갔다. 이 주장에 앞장서고 있는 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들이 전시 준비 중인데 4·3중앙위원회
4.3
양조훈
2013.01.1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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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발발 60주년인 2008년 3월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은 4·3의 의미와 아픈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기념관이다. 이제는 해마다 2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다크투어의 명소이자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기념관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평화기념관이 문을 열기까지에는 남다른 진통이 있었다.제주시 봉개동에 자리잡은
4.3
양조훈
2013.01.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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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발발 60주년을 맞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보수단체들의 집요한 이념 공세로 4·3진영이 시련을 겪었다. 이와 덩달아 국내 중앙언론들의 관심도 예년에 비해 떨어졌다. 이에 반해 일본 신문과 방송 등 외신들이 오히려 적극적인 취재에 나서 대조를 보였다.3월20일쯤 일본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이
4.3
양조훈
2012.12.2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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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4·3 발발 60주년을 맞는 해였다. 따라서 그해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4·3희생자 위령제 참석 여부가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초기 활동 때 4·3위원회의 폐지안을 들고 나오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라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돌
4.3
양조훈
2012.12.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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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던 민주정부 10년을 마감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보수정권이 닻을 올린 것이다. 겨우 제자리를 찾던 4·3 진실 찾기와 명예회복 운동도 이때부터 시련을 맞게 됐다. 보수진영의 조직적인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 목표는 제주4·3위원회의 폐지, 4·
4.3
양조훈
2012.11.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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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당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제주의 산과 들에서, 육지형무소에서, 또 깊은 바다에서 졸지에 희생되었으나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행방불명 희생자는 40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영령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 화해와 상생으로 거듭나는 4·3평화공원
4.3
양조훈
2012.11.1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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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까지 발굴된 총 393구의 유해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옮겨져 신원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 유해와 관련성이 있는 유족들을 대상으로 채혈 작업도 진행됐다. 이렇게 모아진 혈액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송돼 유전자 감식을 거쳤다. 이와 함께 보철이나 골절 유무 등을 확인하는 체질인류학적 분석도 진행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희생자 신원이 하나
4.3
양조훈
2012.11.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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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영내 60년간 방치된 채로 압착옛지적도 발굴 길잡이…문명사회에 "충격"4·3희생자 유해 발굴 ②2007년 8월부터 본격 추진된 제주국제공항 내 4·3희생자 유해 발굴사업은 제주도로부터 위탁받은 제주대학교(책임연구자 강현욱)와 제주4·3연구소(책임연구자 박찬식) 발굴팀이 공동으로 추
4.3
양조훈
2012.11.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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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유해 발굴사업은 반세기 넘게 풀지 못한 숙제였다. 4·3 당시 희생자 중에는 '시신 없는 희생자들'이 많다. 그 숫자가 무려 4000~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법적인 군법회의에 의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끌려갔다가 6·25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해 집
4.3
양조훈
2012.11.01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