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창일 위원장 순발력 핵심조항 살려내유해발굴사업, 4·3평화재단 설립 등 탄력 4·3특별법 개정작업②2006년 9월7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비상한 관심 속에 열렸다. 1년여간 통과여부를 둘러싸고 그동안 논란이 계속됐던 제주4·3특별법 개정안도 상정됐다. 이날 회의에 특별한 관심이 모아진 것은 4&mid
4.3
양조훈
2012.10.30 09:20
-
2004년부터 본격 추진된 제주4·3특별법 개정작업 또한 녹록하지 않았다. 그해 6월 개정안 초안이 만들어졌지만,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2006년 12월말이었으니 꼬박 2년 6개월이 걸린 지난한 여정이었다. 1999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4·3특별법은 애초부터 4·3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4.3
양조훈
2012.10.25 19:27
-
잇단 정상회의 개최 힘입어 추진 가속도각종 평화실천사업 등 정권 바뀐후 후퇴'세계평화의 섬' 선포1991년 4월 제주국제공항 주변 도로에는 색다른 깃발이 휘날렸다. 붉은 바탕에 낫과 망치가 그려진 깃발, '철의 장막'의 상징인 소련 국기였다. 그 '적국'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역사상 처음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한
4.3
양조훈
2012.10.18 19:36
-
2005년 3월 제10차 4·3위원회(위원장 이해찬 총리) 전체회의에서 수형자 606명이 4·3희생자로 처음 결정된 데 이어, 2006년 3월에 열린 제11차 4·3위원회(위원장 한덕수 총리) 회의에서도 수형자 1250명이 희생자로 인정됐다. 여기까지 심사를 통과한 수형자는 징역 20년 이하 해당자였다.이제 남은 관문은
4.3
양조훈
2012.10.15 19:49
-
2005년 3월17일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0차 4·3위원회 전체회의, 수형자를 4·3 희생자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의 초반에 국방·법무장관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자 희생자심사소위 위원장인 박재승 변호사가 나서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격하고 있었다. "김춘배씨는 마포
4.3
양조훈
2012.10.11 19:45
-
2005년 3월17일 희생자 3541명에 대한 심사안건이 상정된 제10차 4·3위원회 전체회의는 회의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동안 "된다" "안된다"로 논란이 많았던 수형자 606명이 상정되면서 처음으로 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느냐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이해찬 국무총리가 주재한 이날 회의에
4.3
양조훈
2012.10.08 19:59
-
제주4·3사건 희생자 심사 과정에서 '수형자'도 그 대상에 포함하느냐 마느냐는 논쟁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수형자들을 4·3 희생자로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보수단체의 주장과, 4·3 재판 자체가 엉터리였고, 또한 전국 형무소에 수감됐던 수형자 대부분이 6·25직후 불법적으로 처
4.3
양조훈
2012.10.04 19:01
-
제주4·3특별법에 정의된 '희생자'의 범위는 "4·3사건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후유장애가 남아 있는 자로서 4·3위원회에서 심의·결정된 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심의·결정 기준은 명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희생자 심사를 어떤 기본원칙으로 할 것인지,
4.3
양조훈
2012.10.01 18:48
-
「6·25전쟁사」 파동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4·3진영에서 국방장관의 문책을 요구하던 상황에서 2004년 7월28일 공교롭게도 국방장관이 전격 교체됐다. 청와대는 남북 함정간의 무선교신 보고 누락사건이 불거지면서 조영길 국방장관이 사의를 표명하자 이를 수리하고, 후임 장관에 윤광웅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임명한 것이다.예비역 해군 중장
4.3
양조훈
2012.09.27 20:05
-
청와대, 국방부-4·3관계자 불러 대책회의쌍방 대립하자 청와대가 "수정하라" 설득 2004년 7월 「6·25전쟁사」 파문이 일어났을 때 4·3유족회·4·3연구소·4·3도민연대 등 4·3 관련단체와 제주도의회 등은 한결같이 국방부가 정부 보고
4.3
양조훈
2012.09.24 20:10
-
2004년 7월 보수단체가 낸 헌법소원 못지않게 국방부가 발행한 「6·25전쟁사」 파문도 논란거리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편찬한 이 책에 제주4·3을 '무장폭동'으로 기술하는가하면 오류와 왜곡사례도 수두룩해서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국방부는 6·25전쟁에 관한 정부 공식 역사서로 1967년부터 13년간에 걸쳐
4.3
양조훈
2012.09.20 19:48
-
2004년 7월 보수단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켰다. 보수단체에서는 "현 정부가 확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는 4·3사건을 무장봉기로 규정한 역사왜곡을 즉각 취소, 전면 수정하라"는 성명 이외에도 헌법소원을 내면서 제주도민
4.3
양조훈
2012.09.17 19:42
-
이선교 목사 중심…18만명 서명지 제출 '제주도민=빨치산 협력자'로 매도해 공분보수단체의 헌법소원 ①2003년 4·3진상조사보고서 확정과 대통령 사과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험난한 고비를 여러번 넘기며 이룬 꿈같은 일이었기에 보람도 컸고, 성취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2004년에 접어들면서 그 못지않은 허망함, 허탈감이
4.3
양조훈
2012.09.03 19:21
-
2003년 4월10일 일본 도쿄 한복판인 닛포리(日暮里) 랑그우드호텔 사니홀에서 제주4·3사건 55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이날 500명이 수용할 수 있는 행사장에 700명의 관중이 몰려 일부 참석자들은 바닥에 앉기도 했다. 필자의 특별 강연과 제주민예총 소속 놀이패 한라산의 4·3 마당극 공연이 있는 행사였다.1988년부터
4.3
양조훈
2012.08.30 19:50
-
"수정공문 시달, 재발방지 약속" 일단락 이후 전국 2천여 고교에 4·3보고서 배포'4·3폭동' 공문 파문2004년 3월18일 제주지역 언론이 "교육부, 전달 공문서에 '4·3폭동·폭도' 표현으로 말썽"이란 제하의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제주4·3사건
4.3
양조훈
2012.08.27 17:13
-
미국서 입수한 4·3수뇌부 사진 주목받아DJ "제주, 이념 질곡에서 벗어났다" 평가4·3보고서 최종본 발간서문 채택문제로 심한 홍역을 치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2003년 12월 드디어 발간됐다. 4·3보고서의 최종본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새로 발간된 보고서에는 수정된 보고서
4.3
양조훈
2012.08.23 20:43
-
2003년 10월15일 4·3진상조사보고서 최종 확정, 10월31일 대통령 사과 표명으로 큰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을 갖고 진상보고서 발간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대외적으로는 수정의견을 반영해서 11월말 발간 예정임을 밝혔다. 그런데 보고서 발간작업은 뜻하지 않은 일로 진통을 겪게 됐다.고건 국무총리는 보고서 최종 발간을 앞두고, 위원회의 심의를
4.3
양조훈
2012.08.20 20:20
-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4·3에 대한 사과 표명으로 제주사회는 들뜬 분위기였다. 제주도와 도의회, 4·3유족회, 4·3관련단체들이 한목소리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가리지 않고 환영 입장을 밝혔고, 한발 더 나아가 후속조치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우
4.3
양조훈
2012.08.02 19:44
-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2003년 10월31일 라마다프라자제주호텔에서 열린 '제주도민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한 분명한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대통령의 입에서 어떤
4.3
양조훈
2012.07.30 20:28
-
청와대 실무팀에 의해 4·3에 대한 정부 입장 표명을 국제행사인 제주평화포럼이 아닌 '제주도민과의 대화'라는 별도의 행사 방침이 결정되면서 장소와 참여 범위 등을 놓고 청와대와 제주도 간의 협의가 진행됐다. 4·3평화공원에서 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위령제가 아닌 대통령 참석행사를 야외에서 하는데 문제 제기가 있었다. 대통령이 지
4.3
양조훈
2012.07.26 19:44